등록 : 2014.09.18 18:49
수정 : 2014.09.19 16:20
최근 숙명여대 작곡과 사태는 오랜 시간 지속되었다는 두 교수의 폭언과 전횡에 학생들이 반발하면서 시작됐다. 학생들은 이런 실상을 대외적으로 알리기 시작했고, 이에 대해 두 교수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반박에 나섰다. 그렇지만 두 교수의 반박은 비논리적이고, 상식에서도 벗어난다.
두 교수는 특정 제자에게 좋은 점수를 주었다는 의혹에 대해 “익명으로 평가했기 때문에 문제가 없다”고 한다. 이름을 가리고 학생 작품을 평가했기에 자신의 제자들에게만 높은 점수를 주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설명이다. 하지만 아무리 이름을 가려도 제자들의 작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고 충분한 레슨을 했다면 자신의 제자 작품을 모를 리가 없다. 이름을 가렸다고 제자 작품을 못 알아본다면 수업이 부실했다는 이야기다. 관현악 작품을 쓰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50분의 레슨 시간을 여러 번 나누어 했다는 주장도 이치에 맞지 않는다. 관현악 작품은 쓰는 데도 오래 걸리지만 보고 문제점을 찾는 데도 시간이 오랜 걸린다. 전체적인 균형과 음색, 배분 등을 고려하다 보면 50분의 레슨 시간도 그리 길다고 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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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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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집과 오선지를 강매했다는 학생들 주장에 대해서는 관행이라는 이유로 자세한 사정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성실성이 전혀 보이지 않는 무책임한 책임회피다. 작곡이라는 것은 고도의 논리성으로 감성을 움직이는 어려운 작업이다. 음 하나가 잘못 놓여 있을 때 전체 구조를 망가뜨리기도 하는 섬세한 작업이기도 하다. 이런 작업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들의 허무맹랑한 논리가 어이없다.
이번 사태를 보면서 더욱 절망한 대목은 어린 학생들이 불이익을 감수하면서 ‘거리’로 뛰어나올 때까지 음악계 내부가 아무런 자정 능력을 보이지 못했다는 점이다. 많은 작곡계 인사들은 이런 문제점을 알고 있었음에도 시종일관 모른체했다. 원로들은 자기와의 개인적 인연을 중시했고 동문들은 같은 학교라는 이유만으로 방관했다. 다른 학과 교수나 강사라도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지켜주기 위해 이들의 문제를 지적했어야 했지만, 이들 역시 자기 밥그릇 때문인지, 또는 귀찮은 일에 휩쓸리기 싫어서인지 눈과 귀를 닫았다.
여러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면서도 여성작곡가협회의 회장으로 문제의 교수를 선출한 것은 무관심과 이기심의 절정이다. 적어도 한 단체의 장을 선출하는 데 아무런 사전 조사도, 합당한 자격요건에 대한 고려도 없이 표를 행사한 셈이다.
지금 어렵게 싸움을 시작한 어린 학생들에게 두 교수는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할 것을 고려하고 있다고 한다. 그러면서 학생들을 자식 같다고 표현했다. 그런데 자식을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부모는 없다.
이번 사태는 우리 사회의 어두운 현실을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기득권을 위해 문제점을 모른척하는 기성세대들, 4년이란 시간만 지나면 더 이상 볼 일이 없다는 생각에 전횡과 횡포에 눈감았던 지난 10여년의 졸업생들, 같은 선생으로서 학생들을 보호해주지 못한 다른 교수와 강사들, 어린 학생들한테 법의 이름으로 협박하는 가해자들. 이들에게 드리워진 암흑은 지금 한국을 휩쓸고 있는 일련의 사태들과 무엇이 다른지 알 수가 없다.
이번 사태가 나중에 어떻게 마무리될지 알 수 없다. 좋은 방향으로 갈지, 아니면 그대로 묻힐지. 하지만 자정 능력이 없는 사회는 앞으로 똑같은, 아니 더 커다란 괴물을 맞이할 수 있다는 점은 분명하다. 잘못된 관행을 고치고 바로잡는 데 많은 사람이 함께 노력해야 한다.
류재준 작곡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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