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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요리’ 말고 ‘음식’을 / 김병연 |
우리나라 식품위생법(1962년 제정) 제51조 ‘조리사’ 항목을 보면 ‘식품접객영업자와 집단급식소 운영자는 조리사를 두어야 한다. 다만 영업자 또는 운영자 자신이 조리사로서 직접 음식물을 조리하는 경우에는 조리사를 두지 아니하여도 된다’고 되어 있다. 조리학과 학생들은 장차 조리명장이 되기를 꿈꾸며 중고교에선 음식을 만들어보는 조리실습을 한다. 그러나 실생활에서는 일본말 ‘료리’에서 나온 요리와 요리하다가 판을 치고 있다.
요리의 첫 기록은 개화기 때의 ‘요리음식점’(한성주보, 1886. 10. 4), ‘덕국인 요리점’ 등이다. 더 먼저는 ‘료리’를 그대로 쓰기도 했는데 그 한자를 읽으면 요리이기에 자연스레 그렇게 된 것 같다. 일본 사람들이 한국 음식을 간코쿠노료리(한자는 한국요리), 중국 음식을 주고쿠노료리(중국요리)로 부르니 ‘료리’를 외국 음식을 가리키는 말로 받아들인 것이다. 일제 강점이 이어지고 일본말 사용이 강제되면서 음식과 음식하다를 잠재운 뻔뻔한 말이다. 일본 사람들은 한국에 ‘음식’이라는 말이 없는 줄 안다.
우리는 줄곧 ‘음식’을 써왔는데 그 첫 기록이 <번역박통사>(1510년께)에 나오고 한글로만 쓴 첫 음식 조리서 <음식디미방>(안동 장씨, 1670년께)도 있다. <음식법, 찬법>(1854)도 있으며 근래 영인 출판되었다. 중국에도 음식이라는 말이 있기는 하지만 주로 쓰는 말은 찬(먹을, 밥)이라서 자신들의 음식을 중찬, 한국 음식을 한찬, 일본음식을 르찬, 서양음식을 시찬으로 부른다. 요리는 본디 중국이나 한국에서 ‘어떤 일을 솜씨 있게 다루어 처리하다’라는 뜻으로만 쓰며 음식의 뜻으로는 쓰지 않는 말이니 일본이 만든 한자말인 것이다. 조리는 ‘몸조리하다’, ‘돌보다’, ‘길들이다’, ‘놀리다’, ‘음식 만들다’라는 뜻을 가진 중국말인데 일본 사람들이 다섯번째 뜻을 받아들여 발전시킨 고급 말이다. 광복 후 조리사연합회와 조리학회가 만들어지니 법조문에도 오르고 이제는 모든 이들에게 꼭 필요한 말이 되었다. 일찍이 방신영이라는 선구적 조리학자가 저술활동으로 ‘음식’을 되찾아놓은 바 있다. <청춘>지 제7호(1917. 5)에 실린 <조선요리제법>(방신영, 1913)의 광고를 보면 한자 세로쓰기한 책 이름 오른편에 한글로 ‘죠션료리만드는법’이라고 씌어 있다. 그는 광복을 맞아 <조선음식 만드는 법>(1946)으로 바꿔 펴냈고 다시 <우리나라 음식 만드는 법>(1952)으로 바꾼 뒤 무려 33판(1958)까지 펴냈다(한국식경대전, 이성우 씀).
한-일 국교수립 이후 일본 바람을 타고 조리연구가들이 <한국요리 백과사전>(1976) <야채요리>(1991) 같은 책들을 펴냈다. 요리라는 말에 미련이 남고 아쉽다면 일본 음식이나 외국 음식을 선망하고 우리 음식에 대한 자부심이 부족한 때문일 가능성이 높다. 음식문화는 이미 일본에 휩싸여버렸는지도 모르지만 이제는 헤치고 나와야 한다. 앞 정부 때 한국 음식 알리기에 그 많은 예산을 썼건만 그에 맞는 성과는 내지 못했다는 평가가 있다. 필자는 그 이유 가운데 하나로 정부 차원의 관련 용어 정리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보고 있다. 어설프게도 한국 요리, 전통 요리, 궁중 요리 같은 말들이 쓰이고 걸핏하면 요리한다는 말을 쓰니 한국 음식의 독창성이 의심받고 일본 음식의 아류로 인식되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요리를 순화 대상 말로 지정하거나 음식과 조리만 쓰도록 명문화하는 일이 시급하다. 한국 음식을 일본 그릇에 차려놓고 자랑하는 것처럼 민망할 뿐이다. 이제 범국민적으로 요리라는 말을 쓰지 말자고 제안한다. 기록상 128년 만이다. 사전풀이가 ‘특별한 재료나 기술, 솜씨로 만든 음식’이니 특별음식으로 부르면 되고 요리한다는 말은 조리한다로 바꿔 쓰면 된다.
김병연 경기도 고양시 일산동구 숲속마을1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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