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1 21:15
수정 : 2005.09.21 21:15
|
전성군 농협중앙교육원 교수·경제학 박사
|
독자칼럼
밤송이가 연초록의 광채를 띠고 있는 걸 보면, 어느새 들녘에도 가을이 찾아온 모양이다. 세월이 멈춰선 듯 고즈넉한 고향을 떠올리고 있노라니, 불현듯 어릴 적 마을회관 거울 위에 붙어있던 밀레의 <만종> 그림이 생각난다. 그 소박성이 좋고, 진실성이 무척이나 마음에 들었더랬다.
가난한 농군의 아들이었던 밀레는 일생 동안 일하는 농부들을 그림의 소재로 삼았다. 마을 사람들이 푼푼이 모아준 돈으로 파리에 가서 그림 공부를 하였고, 고향에 돌아와서는 농사를 지으면서 그림을 그렸다. 농촌의 삶 속에서 고된 노동의 모습을 그리려고 한 밀레의 자세는 농촌 인구가 도시로 빠져나감에 따라 농촌이 황폐해지는 시대를 반영하고 있다. <이삭줍기> <양치는 소녀> <씨뿌리는 사람> 등의 대표적인 작품만 보아도 농촌지킴이 역할을 얼마나 톡톡히 해냈는가를 알 수 있다.
쌀 개방. 요즘 우리에게 익숙하게 들리는 낱말이다. 초국적 자본의 힘에 눌려 쌀 개방이 현실화된 처지에서 이에 저항하는 농업인의 생존권 투쟁은 당연하다. 그러나 대다수의 국민은 쌀 개방이 앞으로 우리에게 가져올 재앙의 심각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특히 햄버거를 즐겨 먹는 디지털세대는 쌀의 가치를 알려고 하지 않는다.
그러나 앞으로도 누군가는 벼농사를 지을 것이며, 그 사람이 곳간 열쇠를 쥐게 될 것이다. 이젠 그 열쇠를 가진 농업인에게 우리의 생명을 의탁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올 것이다. 우리의 생명을 지키기 위해 쌀을 지켜야 하는 사정이 거기에 있다. 쌀은 생명이다.
어떻게 해야 쌀을 지킬 수 있을까? 먼저 생명 있는 쌀을 생산하고 생명 있는 쌀을 사먹어 주는 일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밀레의 만종은‘경종’을 울려주고 있다. 보지 않았던가. 석양을 등지고 손을 모으고 기도하면서 서 있는 두 사람을. 그 기도는 농촌을 끝까지 지키겠다는 농민들과, 그들의 모습을 그림에 담은 밀레의 다짐이다.
전성군/농협중앙교육원 교수·경제학 박사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