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0.16 18:55
수정 : 2014.10.16 18: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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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훈 기자 kimyh@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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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헨티나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통령궁 앞 광장은 ‘5월 광장’으로 불린다. 그 광장에 1977년 4월부터 매주 목요일 오후면 어김없이 흰 두건을 두른 어머니들의 집회가 시작된다. “산 채로 돌아오라.” 군사정권에 의해 납치된 뒤 생사를 알 수 없는 실종자들의 어머니들이다. 광장을 지켜온 ‘5월 광장의 어머니들’은 너무 연로하신 터라 이제는 30분 정도 광장을 돌고 약간의 발언을 하는 정도밖에 하지 못하지만 5월 광장은 민주주의와 인권을 염원하는 많은 이들이 찾는 유명한 여행 테마로 자리잡았다.
한국에도 이런 집회가 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수요집회가 대표적이다. 그리고 한국의 ‘5월 광장 어머니들’로 불리는 민주화실천가족운동협의회(민가협) 어머니들의 목요집회가 있다. 목요집회가 16일로 1000회를 맞았다. 1993년 9월23일, 당시 “한국에는 양심수가 없다”며 양심수 석방 요구에 기만적으로 대응했던 김영삼 정권에 항의해서 시작한 목요집회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 보랏빛 수건을 두른 어머니들은 21년간 서울 종로2가 탑골공원을 지키고 있다. 21년이 지나 40~50대의 어머니들이 60~70대의 노인이 되었고, 민가협의 대표적인 인물이었던 임기란 어머니는 80대 중반에 병까지 겹쳐 운신조차 하지 못한다. 그런 어머니들은 20년 넘는 세월 동안 “양심수 석방, 국가보안법 철폐”를 한결같이 외치고 있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목요집회를 통해서 정치적 신념을 이유로 40년 이상 구금되어 있던 김선명씨 등 비전향 장기수의 문제가 사회적 의제로 떠올랐다. 어머니들의 지속적인 문제 제기에 그들이 감옥 문을 나섰다. 북으로의 송환을 요구한 장기수들의 일부가 북으로 갈 수 있었던 것도 민가협 어머니들의 힘이었다. 그러고도 어머니들은 목요집회를 계속해야 했다. 2004년에는 국가보안법 철폐 투쟁이 최고조에 달했던 때이다. 국회에서 국가보안법 폐지 법률안이 끝내 상정되지 못했지만 국가보안법을 남용하던 관행들에는 철퇴를 가했다.
그때까지는 그런대로 보랏빛 수건을 두른 민가협 어머니들의 목요집회는 외롭지 않았다. 그 뒤 점차 양심수와 국가보안법 문제는 진보운동진영 내에서조차 뒷전으로 밀려났다. 목요집회는 언론도 세상도 관심이 없는 양심수 가족들의 호소의 장이 되었다. 이제는 두 사안을 넘어 우리 사회 인권 문제라면 어떤 것이라도 발언하는 인권광장의 구실을 하고 있다.
우리 사회엔 이전보다는 수적으로 적어졌지만 여전히 양심수들이 존재한다. 지난해 북풍몰이의 희생양인, 이른바 ‘이석기 의원 등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관련 구속자들이 있다. 70대 노인도 구속되어 있다. 생존권 투쟁에 나섰던 노동자들을 비롯한 민중운동가들이 또 감옥에 있다. 하지만 사회는 그들의 존재에 대해 눈길조차 주지 않고 있다. 국가보안법 폐지를 통해서 민주주의를 한 단계 고양시키자는 논의도 사라진 지 오래다.
민가협 어머니들의 외침이 외롭지 않도록, 그리고 그분들의 주장이 힘을 얻을 수 있도록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탑골공원을 찾아주기를 바란다. 함께 머릿수 하나 보태기라도 하면서 우리 사회의 인권 현실과 과제를 체감하는 그런 체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찬바람이 불고, 눈보라가 몰아치는 거리를 민가협 어머니들은 앞으로도 여전히 지키고 있을 것이다. 5월 광장 어머니들이 과거의 실종 사건을 잊지 말자고 40년 가까이 광장을 지키고 있듯이 외롭게 양심수의 문제를 제기하는 민가협 어머니들의 곁에 서보자. 매주 목요일 오후 2시, 탑골공원에서는 1000회를 넘긴 목요집회가 열릴 것이다.
박래군 인권중심 사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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