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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16 18:55 수정 : 2014.10.16 18:55

지금부터 20년 전 이달, 1994년 10월21일 아침 7시. 등교하던 꽃다운 학생과 민간인 32명이 억울하게 죽음을 당하고 17명이 부상을 입은, 이른바 성수대교 사태가 벌어졌다.

20년이 지난 지금, 당시의 교량 부실공사 때문에 아까운 생명들이 스러져 갔던 일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성수대교는 1979년 10월15일 준공된 뒤 15년 만에 무너져 내렸다. 재벌 건설업체의 부실공사와 이를 관리 감독하지 못한 무능한 김영삼 정부에 대해 온 국민이 치를 떨었고 거세게 규탄했다. 당시 정부는 유가족들을 위로한다면서 성수대교 북단에 ‘성수대교 사고 희생자 위령비’를 건립했다.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떠올렸다. 2014년 희생자 위령비의 존재와 위치를 알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 필자도 성수대교를 건너면서 ‘위령비’라고 써진 간판만 봤을 뿐이라 위령비가 어디쯤 있을까 궁금해 마음먹고 찾아보기로 했다.

얼마 전 경기도 남양주시를 다녀오다가 위령비 주차장에 간신히 차를 세웠지만 위령비가 어디에 있는지 도무지 찾을 수가 없었다. 그다음엔 한남동에서 남양주 쪽으로 가다가 위령비 주차장이라고 씌어 있는 곳에 마음먹고 차를 댔다. 그런데 주차장으로 들어가는 1차선 차도가 중랑천에서 진입하는 차로와 만나게 되어 있고, 쌩쌩 달리는 다른 차들을 힘겹게 피해야 했다. 더구나 주차장 입구엔 대형 화분들이 놓여 있어 화분과 화분 사이에 순간적으로 차를 대야 했다. 초보 운전자들은 감히 엄두도 못 낼 것 같았다.

그다음도 문제다. 주차에 성공해도 위령비가 세워진 곳으로 가려 하니 세상에 이런 어이없는 일도 있을까 싶었다. 사람이 건너갈 수 있는 보행자 도로 표시가 전혀 없었다. 달리는 차량이 사람을 보고 주춤하는 사이를 노려 겨우 위령비 쪽으로 건너갈 수 있었다.

결국 성수대교 위령비는 시내버스도 지하철도 없고, 택시나 자가용을 가진 사람만이 출입을 할 수 있는 서울 속의 섬에 갖혀 있는 셈이었다. 도대체 위령비는 왜 세웠을까? 위령비란 가신 님의 명복을 빌고 가족들의 비통함을 어루만지고 다시는 이 땅에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참사가 재발되지 않도록 교훈을 주기 위함이 아니던가? 위령비를 이처럼 꽁꽁 숨겨놓는 이유가 무엇인가?

최근 세월호 참사 이후 일부에서 위령비 건립에 대해 말들을 한다. 제발 성수대교 참사 위령비와 같이 세우려거든 아예 세우지를 마라! 공연히 아까운 세금만 낭비하고 말 것이다. 위령비를 세우려면 ‘국민위기극복 상징탑’ 정도로 누구나 쉽게 접근할 수 있고, 시민들이 잘 볼 수 있는 청계로나 남산타워 옆 정도에 세워야 할 것이다.

이칠용 한국공예예술가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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