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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100만명의 노후 밥줄’ 졸속 변경 안돼 / 전덕영 |
똑똑한 청년이 있었다. 국내 대학을 졸업하고 외국 유명 대학원에서 박사 학위를 취득하였다. 박사후과정까지 마치고 나니 30대 중반이 되었다. 그동안 대학 졸업 친구들은 이 일 저 일 하면서 이미 큰돈을 만져본 경험도 가지면서 살고 있었다. 그러나 청년은 가장 큰 기와집의 머슴이 되어 적은 돈에도 만족하며 살기로 했다.
머슴 일을 하는 동안 큰 잘못이 없는 한 쫓겨나지는 않는다는 좋은 조건이 있었다. 게다가 새경 중 일부를 주인이 따로 떼어 적금을 들고 30년 후에는 집을 사주겠다고 하는 것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그래서 머슴은 즐거운 마음으로 주인이 시키는 대로 열심히 일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마음에 맞는 직업을 새로 찾거나 세상 유람을 다닐 때에도 머슴은 정해진 시간과 일터를 벗어나지 않았다. 적은 돈이지만 새경을 올려 달라고 떼를 쓰지도 않았다. 그저 주인이 정해준 대로 받아 생활하면서 가정을 이루었고 어느덧 20년이 흘렀다.
그동안 주인은 적금하던 돈이 불어나자 방탕한 아들의 빚을 갚는 데 수시로 사용했다. 더구나 마실 만한 수돗물이 있는데도 미래를 대비한다는 명분으로 여기저기 깊은 우물을 파며 지출이 크게 늘어났다. 그래서 그 큰 기와집 주인은 경제적으로 쪼들리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주인은 이전에 약속한 집을 못 사주겠다고 하였다. 집 살 돈이 바닥이 났다는 것이었다. 그래서 10년 후에는 원룸으로 들어가라고 했다. 더구나 적금 비축을 위해 새경도 깎겠다고 했다. 주인은 아들과 그 친구들까지 내세워서 그동안 세상이 변했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20년 전 약속은 잘못된 것이었고 그 집을 요구하는 것은 이제 도둑이나 다름없다고 면박을 주었다. 그 청년은 크게 상심했다. 다음날 아침 청년은 주인집 대청마루 대들보에 목매 숨진 채로 발견되었다.
공무원연금 삭감 문제가 도마 위에 올라 있다. 어느 날 갑자기 이런 일이 발생했다. 학술 연구보다는 이익집단들 친목활동 같은 학회에서 이런 주장을 내놓았다. 공무원들 일에 금융 및 보험기관과 사립대학 관련자들이 앞장을 섰다. 진행되는 내용도 어수선하기 짝이 없다. 40%를 더 내고 30%를 삭감한다고 한다. 돈 내는 기간도 연장하겠다고 한다. 이미 퇴직하여 받고 있는 연금액수도 줄이겠다고 한다. 연금의 상한선을 둔다고도 한다. 연금액수가 많은 사람을 더 많이 깎겠다고도 한다. 아직 아무것도 결정된 바 없다는 말도 들린다. 연금 대상 당사자들로서는 어리둥절할 뿐이다.
일처리에는 원인과 결과를 잘 따지는 것이 필요하다. 공무원연금제도가 왜 생겼는지, 그동안 어떠한 조건에서 어떻게 변화되었는지, 국민연금과는 어떻게 다른지, 사학연금과는 어떤 관계인지 차근차근 분석해야 한다. 그리고 납득할 수 있게 합리적으로 처리되어야 한다. 개혁이라면 잘못된 것을 고치는 것인데 무엇이 잘못된 것인지 먼저 진단되어야 한다. 그리고 고친다면 그것이 누구를 위한 개혁인지 분명해야 한다. 지금 그렇게 번갯불에 콩 볶아 먹듯, 어느 한 정권에서, 더구나 밀실에서 처리해야 할 특별한 이유라도 있는 것인가? 권력자들의 횡포는 아닌가? 상대적으로 더 많은 지지를 받기 위한 무리수는 아닌가? 나라 살림이 어렵기에 이 일을 진행한다고 한다. 그렇다면 정치 지도자들이 먼저 경제를 살리면 되지 않겠는가? 국민연금과 형평에 맞지 않아서가 문제라면 국민연금을 올리는 방도는 없는 것인가?
100만 공무원의 노후 밥줄 문제이다. 수십년 전부터 약속되었던 일을 대상자들의 동의 없이 몇 사람이 졸속으로 변경해서는 안 될 것이다.
전덕영 전남대 교수회장·대학평의원회 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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