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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0 18:53 수정 : 2014.10.20 18:53

아파트 정원에 지하 주차장과 연결되는 커다란 채광창이 있다. 푸르스름한 반투명의 채광창 덕택에 주차장이 자연스런 최소한의 밝기를 유지한다. 그리고 채광창 앞에는 철없는 아이들을 생각해 위험 표시를 큼직하게 해 놓았다. “추락 위험. 절대 올라가지 마시오.” 안내문이 있었지만 내심 불안했다. 원래 아이들은 어딘가 기어오르는 존재 아니던가.

판교 어디쯤에선가 일어난 사고를 보면서 그 채광창이 떠올랐다. 물론 이번 참사의 주범이 채광창은 아니다. 주차장으로 통하는 환기구다. 그 환기구는 철제 구조물 같아 보였다.

사진을 보면, 높이가 허리쯤 온다. 공연을 보며 환호성을 지르기에는 부족함이 없는 유혹이다. 그 유혹을 정당시하게 만드는 게 또 뭐가 있을까. 바로 금속성 재질이 주는 견고함의 이미지다. 그게 플라스틱 재질이었거나 아무튼 다른 재질이었더라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모른다. 서울에 수없이 깔려 있는 지하철 연결 환기구를 나는 수도 없이 발을 쾅쾅 울려대며 지나쳤었다. 옆 가게 간판이 바람에 뚝 떨어질지언정 그 환기구가 유약한 존재라고 의심한 적은 단 한번도 없다.

물론 문제의 환기구를 만들고 운용하는 당사자 어느 누구도 그 위에 빽빽이 올라가 발을 구르리라곤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걸 생각해서 100명이라도 견딜 수 있는 철제 환기구 틀을 만들라는 주문도 당연히 아니다. 하지만 일어날 수 있는 모든 일을 생각하고, 그것이 가져올 위험성을 상상하고, 그걸 경고하는 세심한 배려 같은 것은 아끼지 말아야 했다. 그 환기구를 쇠줄을 둘러 호위할 수야 없는 노릇이지만, 눈에 띄는 경고 표지 정도는 꼭 있어야 했으리라. 우리가 사는 약 포장의 무수히 깨알 같은 위험 표식들은 그걸 먹어서 일어날 무수히 작은 확률과 무수히 많은 가능성을 동시에 일러준다. 그게 제약사의 책임 회피에도 쓸모 있겠지만, 어쨌든 불가결한 요소다.

대부분 사람들의 냉정한 반응들을 읽고 조금 놀랐다.

죽은 사람들의 부주의와 개념 없음을 탓하기란 어렵지 않다. 다만 그 부주의의 대가가 목숨이었는데 그렇게까지 돌팔매질할 일은 아니지 싶었다. 애초에 환기구란 곳을 올라가서는 안 된다는 게 상식이라는 말에도 동의한다. 그럼에도, 몰상식이 넘쳐흐르는 이 나라에서 ‘아주 작은 몰상식’ 하나를 얹다가 회복할 수 없는 액운을 당한 사람들에게 굳이 할 말은 아니지 싶었다.

인간에 대한 아주 작은 예의 같은 것, 쫓기듯 잰걸음으로 내 몸 하나 건사하기 힘든 요즘, 그런 기대는 그냥 호사일 뿐일까. 무너진 환기구를 세우고 고치더라도 부주의에 대한 힐난, 아까운 목숨에 대한 정죄만이 기승을 부린다면 아무것도 제대로 고쳐진 것은 없으리라. 산소가 통하여야 할 공간에 질식이라는 두 음절로 채우지 말았으면 싶다.

서동진 서울시 송파구 잠실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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