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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0.27 18:45 수정 : 2014.10.27 18:46

남재희 언론인

정치학의 고전으로 흔히 첫손가락에 꼽는 니콜로 마키아벨리의 <군주론>은 피렌체(플로렌스)의 실권자 가문에 헌정된 것이다. 정책을 입안하는 책사는 그것이 프린스(군주)에 의해 채택되기를 열망해 마지않는다. 동서고금이 다르지 않다. 공맹(孔孟)시대의 학자들도 그랬다.

나도 YS(김영삼 대통령)에게 민주노총(그 전신)을 합법화하도록 헌책하는 데 정성을 다했으나 그는 부총리를 책임자로 하는 팀에 결정을 위임하는 편법을 택하여 피했다. 정권 말기에 합법화를 하려다가 밑에서의 장난으로 노동대란만 치르고, 결국은 DJ(김대중 대통령) 정권 때로 미루어졌다.

김종인 박사는 ‘경제민주화와 복지’라는 정책을 박근혜 후보 때부터 헌책하려고 온갖 정성을 다했으나 선거 때만 이용당하고 결국 실패하여 얼마 전 결별을 고하는 기자회견을 하였다. 그가 그동안 들여온 공력을 생각할 때 아마도 참담하다 할 정도의 심정일 것으로 짐작한다. 그것은 경제민주화의 이슈를 중심으로 펼쳐졌던 화려한 선거정책 선전 드라마의 최종적 막이 내림을 의미한다. 일이 끝난 지는 오래되었지만 입안 주역으로는 그렇다.

5·16 쿠데타 뒤인 1963년 정치활동 재개가 허용되었을 때 창당된 민정당(民政黨) 때부터 나는 그와 가까웠다. 조부인 가인 김병로씨가 대표최고위원이었고, 그가 단 한명뿐인 비서역이어서 취재기자로 친해진 것이다.

독일 유학을 가서 조세제도 중심의 경제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은 그는 독일의 영향을 흠씬 받은 것 같다. 마침 그가 유학했던 뮌스터대학에는 추기경이 되기 전의 김수환 신부가 유학을 했었고 서로 가자 떠나는 엇갈림이 있었던 것 같다. 김 신부는 가끔 모교를 방문했고 김 박사도 만났다.

독일은 ‘사회적 시장경제’라는 말에서 볼 수 있듯이 ‘사회적’(social)에 대단한 비중을 둔다. 법치국가를 말함에 있어서도 ‘사회적 법치국가’란 표현도 쓴다. 이 ‘사회적’이란 단순한 수사 이상의 의미가 있는 역사적 배경을 가지고 있다. 독일은 계급혁명적 위기를 겪기도 하였고 나치즘의 광란을 뼈저리게 체험하기도 하였다. 그런 역사적 교훈에서다. 간단히 말하면, 계급지배나 대립을 지양하여 사회의 균형이나 통합을 유지하기 위한 통합의 목표 가치로 ‘사회적 시장경제’, ‘사회적 법치국가’라고 ‘사회적’을 강조하고 있는 것이다. 모든 것의 위에 ‘사회적’이란 공동체의 가치를 둔다는 의미라고 할 수 있다.

요즘 우리나라에서 독일을 모델로 하자는 연구가 활발한데 이 ‘사회적’의 의미, 그러니까 모든 것의 기반인 공동체의 가치를 유의해야 할 것이라고 본다.

6·29 선언 뒤 헌법이 전면적으로 개정될 때 그와 나는 당과 국회의 개헌특위에서 일했다. 그때 그가 성안하여 위의 재가를 얻어 삽입한 것이 유명한 제119조 2항(경제민주화 조항)이다. 나는 그것을 미국에서의 예에 따라 김종인 조항이라고 이름지었다.

간단히 설명하여 그 조항은 독일의 사회적 시장경제의 정신이다. 독일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우리의 임시정부 건국강령에 담긴, 그리고 제헌헌법에 영향을 준 조소앙의 삼균주의 정신이기도 하다. 제헌헌법엔 유진오씨 등 기초자들이 바이마르 헌법을 크게 참고했다고 한다. 그래서 정치적·경제적 민주주의의 정신이 살아있다는 것이다. 따라서 김종인 조항은 평지돌출이 아니고, 그러한 흐름을 명확히 성문화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동안 개헌 논의가 여러 번 있었고, 그 논의에 참여해 보기도 하였다. 거기서 단골로 등장하는 게 제119조 2항의 삭제 문제다. 전경련을 대변하는 학자들이 주장을 하고, 하이에크 학파를 따른다는 교수들이 열을 올리기도 하였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개헌 논의에서 그 조항의 삭제가 합의된 일은 한 번도 없었다. 그 조항 삭제를 위해 작심하고 나선 이들이 있었음에도 용케 공세를 견디어냈다. 신통한 일이다.

지난번 대통령 선거에 훨씬 앞서 김종인 박사는 훌륭한 대통령감을 물색한다고 분주했다. 내가 알기로도 많은 언론인들을 만났다. 나는 그 대통령감의 물색이 자기 정책의 수용 가능성보다는 혹시나 당선 가능성에 더 비중이 두어진 것이 아닌가 하고 판단했었다. 정책수용 가능성과 당선 가능성은 완전 다른 이야기다. 물론 당선 가능성이 직접적이고 현실적인 것이지만 말이다.

박근혜 후보에 점을 찍고 그는 나에게 박 후보가 그의 정책을 수용할 가능성이 크다는 점을 내비쳤다. 그러고는 선거에서 정책 아이디어맨이 되기도 하고, 간판스타가 되기도 하면서 박근혜 후보 당선에 전력투구하였다.

그때 선거전의 흥행몰이는 ‘경제민주화와 복지’였다. 모든 선거전에 흥행몰이감이 있는 것이다. 정책을 많이 나열한다고 되는 게 아니다. 국민이 공감하는 ‘이거다’ 하는 정책이 중요하다. 예를 들어 ‘보통사람의 시대’ 같은 슬로건 말이다. 아마 김종인 박사가 선수를 쳤을 것이다. 그러자 문재인 후보 쪽의 이정우 교수 등도 열을 올렸다.

‘경제민주화와 복지’ 문제가 먼지 쌓인 도서관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더니 김종인 박사의 고별사를 듣게 되었다. ‘복지’는 우리 국민 대다수의 염원이 되었다. 앞으로 정치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할 때 그 이슈는 대단한 위력을 갖고 다시 표면으로 솟아오를 것이다.

그때 김종인, 이정우, 유종일씨 등의 논객이 펼쳤던 화려한 논리전개와 청사진 제시 등은 지금도 ‘좋았던 나날들’로 기억된다. 국민들의 머리에도 아마 뚜렷이 각인되었을 줄로 안다. 시대의 명제가 ‘경제민주화와 복지’라고. 최근에 어느 공적 기구의 여론조사 결과를 보니 국민의 압도적 다수가 시대의 명제로 ‘복지’를 꼽았다고 되어 있는데 그것도 그런 영향일 것이다.

대통령 선거 종반에 가서 박근혜 후보는 재벌의 순환출자에서 기존 것은 불문에 부치고 신규만을 제한하겠다고 일정한 제동을 걸기는 하였다. 대선이 끝나자 판은 식어갔다. 극도로 흥분한 선거의 뒤판은 대개 그렇기 마련이지만 너무 허전했다. 박근혜 캠프에서 간판 노릇을 했던 이상돈 교수가 먼저 떨어져 나가고, ‘경제민주화와 복지’ 문제가 마치 먼지 쌓인 도서관으로 되돌아가는 듯하더니 드디어는 김종인 박사의 고별사를 듣게 된 것이다.

공자, 맹자의 시대에도 정책건의가 수용된 게 드물었다. 마키아벨리도 물론 짝사랑으로 끝났다. 프린스에의 헌책은 그만큼 어렵다. 정책의 알맹이가 우선 중요하고 그것을 프린스에게 어떻게 파느냐 하는 설득력과 외교술도 못지않게 중요하다. 이 두 측면에서 모두 성공해야만 그때 책사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정치학에서는 책사 개인의 능력보다는 정치세력의 문제를 중시한다.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경우도 그 주장을 뒷받침하여 추동하는 세력을 중시한다. 복지를 갈망하는 서민층, 노동자들이 얼마나 의식화하여 그 문제를 주장하고 밀고 나가느냐 하는 것이다. 그 추동하는 힘이 있을 때 정치에서는, 국회에서는 드디어 구체화의 움직임이 있게 된다. 이 추동하는 힘이 정말 막강해야지 웬만해서는 잘 움직이지 않는 게 정치현실이다. 경제민주화에 있어서도 재벌기업이 아닌 대기업들이, 그리고 중소기업들이 움직여야 한다. 그동안 그런 움직임이 얼마간 있어서 동반성장 운운하기도 한 것이 아닌가.

이번의 ‘경제민주화와 복지’란 선거 막간극(幕間劇)에서는 정책이론가들의 논쟁이나 선전은 있었으나 그것을 뒷받침하는 세력의 추동이 매우 약했다. 막간극이라고 말했는데 성급히 고쳐 말해야겠다. 복지를 요구하는 밑으로부터의 힘이 다시 살아날 때 그것은 막간극이 아니라 전주곡(前奏曲)이 되는 것이다. 앞서 말한 여론조사에서처럼 ‘복지’는 우리 국민 대다수의 염원이 되었다. 앞으로 정치가 그것을 충족하지 못할 때 그 이슈는 대단한 위력을 갖고 다시 표면으로 솟아오를 것이다.

이번 결별 인터뷰를 한 김종인 박사에게 위로의 말을 하고 싶다. 그리고 선거 때 ‘경제민주화와 복지’의 불꽃을 키웠던 여러 이론가들에게 그들의 노력이 결코 헛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해두고 싶다. 불씨는 분명 살아있고 다시 큰 불길로 일어날 것이다.

우리도, 예를 들어 독일과 같은 선진사회가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그 ‘사회적’(독일어·Sozial)이란 의미 말이다. 사회공동체의 이익이 모든 부분 이익의 위에 있는 그런 사회 말이다.

남재희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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