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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한-중 FTA, 지킬 것은 지켜야 / 정명섭 |
우리나라는 한-칠레,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체결 이후 한-중, 한-뉴질랜드 등 약 20개국과 에프티에이를 체결할 계획이다. 에프티에이가 이 시대의 가장 중요한 이슈라는 것을 부정할 수 없다. 지난 7월 진행된 한-중 정상회담에서는 올해 안 한-중 에프티에이 타결을 선언한 바 있다. 한-중 에프티에이는 침체에 빠진 우리 경제가 살아날 좋은 기회가 될 수도 있지만 협상 대상 품목에 따라 국내 산업 분야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혀 있기 때문에 신중한 접근이 요구된다. 단순히 비교우위의 경제 논리에만 의존하다가는 국내 유망 산업의 기반을 몰락시킬 수 있다.
한-중 에프티에이 체결 때 농식품 분야 중에 가장 우려되는 분야는 전분당 소재 산업이다. 전분당은 옥수수를 가공하여 만든 전분이나 당류를 지칭한다. 맥주, 청량음료, 과자류, 각종 소스, 냉동식품, 분유, 어묵 및 소시지 등 일반인이 마트에서 구입하는 가공식품 중 80% 이상에 전분당이 들어 있다. 전분당을 식품산업의 반도체이자 기초 식량 소재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현재 우리나라 국민들이 먹는 전분당의 대부분은 국내에서 생산된다. 전분당 생산업체는 엄격한 공정 관리를 통해 안전한 제품을 만들고 정부도 원료 조달과 생산 과정 전반을 관리하고 있다. 사소한 문제가 식품 산업 전체의 위기와 직결되는 만큼 다른 품목보다 더 철저하게 감독하고 있다. 중국산도 일부 유통되고 있지만, 대부분의 식품기업들은 전분당의 품질이나 안전성 등을 이유로 국산만을 사용하고 있다. 8%의 관세가 가격 차이를 상쇄하여 국산을 사용할 수 있는 버팀목이 되고 있다.
만일 에프티에이 협상 과정에서 중국 협상팀이 강하게 관세 철폐를 요구하고, 우리 정부가 경제 논리에 사로잡혀 전분당 일부 품목을 양보하게 되면 수년 안에 국내 기초산업인 전분당 산업은 몰락하고 소비자들은 어쩔 수 없이 안전성이 미심쩍은 중국산 전분당이 들어간 먹거리를 구매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만일 멜라민 사태와 같은 일이 발생하거나 중국이 자국의 식량 사정을 이유로 수출을 제한한다면 전 국민의 식품안전과 식량안보가 심각한 위기에 직면하게 될 것이다. 전분당은 장치산업이어서 생산기반이 무너져 공장 가동률이 떨어지면 기업체들이 몰락하고 실업자는 늘어날 것이다.
한-중 에프티에이 협상의 성패는 단지 당장 눈앞에 보이는 경제적 효과나 이득으로 측정되는 것이 아니다. 국민의 안전과 국가 식량안보, 건전한 산업발전 등을 위해 결코 양보해서는 안 될 것들을 얼마만큼 잘 지켰는가가 더 중요할 수 있다. 비교우위에 따른 특정 수출산업을 위해 국민안전과 같은 기본적인 가치를 희생한다면 국민적 저항에 직면할 수 있다. 정부는 한-중 에프티에이 체결에 신중하게 접근해 국민의 기초 식량소재인 동시에 차세대 바이오 산업의 주축이 될 수 있는 전분당 산업을 확실히 지켜주길 바란다.
정명섭 중앙대 식품공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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