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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03 18:48 수정 : 2014.11.03 18:48

세상읽기 ‘혁신학교는 답이 아니다’를 읽고

비정규직, 청년실업자가 되지 않기 위해서, 또 물질적 부를 얻기 위해 극악한 지위경쟁을 하는 사회 체제가 학교마저 살벌한 곳으로 만들었다는 데 동의한다. 초·중등 교육이 입시에 종속되고, 대학 교육마저 전문직과 대기업 취업의 입문으로 전락한 현실은 충분히 교육의 위기라 할 만하다.

그러나 ‘오늘날 학교 교육이 강요하는 배움 그 자체가 실제의 사회경제적 삶과, 한 존재의 내적 성장과 무관하다’는 이계삼씨의 의견(10월28일치 ‘세상읽기’ 칼럼)에 동의할 수 없다. 배움이 시험과 입시를 위한 지루한 노동이 되어버렸기 때문이지 학교에서 가르치는 모든 것이 실제 삶과 무관한 것은 아니며, 학생들의 자발성을 끌어낸다면 내적 성장에 이를 수 있는 내용들은 많다.

몇몇 혁신학교는 이런 학생들의 자발성을 이끌어내는 데 꽤 성공했다. 한번에 열걸음을 걸을 수는 없다. 체제 안에서의 변화는 체제 밖의 혁명과 다르다. 현실적 상황을 고려하면서 가능한 만큼씩 바꿔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근본적 변화가 한번에 ‘불가능’하다고 해서 수많은 아이들의 삶이 그곳에 있는데, 학교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다.

일반 학교에서 강요된 생활 규정에 복종하며 그 규정에 의문을 품거나 자기 의견을 말할 수 없는 학창 시절을 보낸 아이들과, 혁신학교에서 ‘교사-학부모-학생’이 함께 논의하고 수시로 토론을 거친 생활협약을 만들어서 스스로 규칙을 정한 삶을 살아본 아이들의 삶이 같을 것인가? 교실에 가만히 앉아서 교사의 주입식 수업을 들은 학생들과 매 시간 모둠을 통해 협력하고 스스로 활동을 기획하고 연구 과제를 정해 몰입해본 학생들의 삶이 같을 것인가?

혁신학교의 이런 구체적이고 다양한 시도들을 간과하고, 수많은 실천들을 ‘답’이 아니라 일축한다면, 우리는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계삼씨의 말처럼 “실제의 사회경제적 삶과 연관되는 ‘삶의 기술’, 앞으로 닥쳐올 세상을 미리 살아가는 ‘연습’의 과정들을 학교 교육과정 안으로 진입”시키고자 한다면, 그 시도와 논의는 혁신학교를 포함한 모든 제도 교육 안에서는 불가능한가?

혁신학교 선생님들은 혁신학교의 핵심 가치로 ‘학교 내 민주화와 교사·학생의 자율성’을 들었다. 혁신학교는 가능성의 공간이다. 하나의 답을 제시하는 곳이 아니다. ‘민주적 토대 위에서 교사와 학생이 무엇이든 만들어갈 수 있는 공간’이 혁신학교인 것이다. 따라서 단순히 현재 만족스러운 모습이 아니라고 해서 혁신학교의 실천이 의미가 없다고 하는 것은 옳지 않다.

다시 이계삼씨가 인용한 시로 돌아가보자. “나는 영훈초등학교를 나와서/ 국제중학교를 나와서/ 민사고를 나와서/ 하버드대를 갈 거다./ 그래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정말 하고 싶은/ 미용사가 될 거다.” 초등학교 1학년생이 썼다는 이 시를 읽으며 나는 오히려 즐거웠다. 하버드를 나와서 미용사가 될 수도 있다. 하버드를 나와서 미용사가 되는 것이 별다른 이야깃거리가 되지 않는 세상을 나는 꿈꾼다. 어른들의 단순 욕망과 고정관념을 멋지게 뒤집은 시가 아닌가? 이른바 ‘스카이’를 나와서 농부가 되거나 생산직 노동자가 된 분들을 나는 알고 있다. 그렇다고 그분들이 스카이를 나온 기간의 삶이 무의미했나? 아니라고 생각한다.

오늘날 교육의 파행 원인 중 하나는, 초·중등 교육이 대학 입시와 전문직이나 대기업에 들어가기 위한 도구나 통과의례쯤으로 전락한 데 있다. 굳이 대학에 안 가도 곧장 미용사가 될 길을 열어주는 것이 교육이라면, 초·중등 교육 자체는 미래의 직업을 위한 준비기관이며 통과의례일 뿐이라는 점에서 이계삼씨의 해결책은 그가 비판하는 이들의 발상과 닮았다. 그 전에 먼저 그 초등학생에게 한국의 미용업계에 종사하는 분들의 열악한 현실을 바꿀 수 있는 지혜와 감수성을 가르칠 수 있어야 한다. 그런 학교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혁신학교들에서 나는 그 가능성을 보았다. 그리고 우리에게 필요한 건 단답형 정답이 아니라 작지만 가능한 실천과 삶 자체다.

정현주 경기도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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