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주요메뉴 바로가기

패밀리사이트

  • 한겨레21
  • 씨네21
  • 이코노미인사이트
회원가입

본문

광고

광고

기사본문

등록 : 2014.11.05 18:35 수정 : 2014.11.05 18:35

일러스트레이션 고경일

지난달 22일 서울동부지법 민사21부 심리로 열린 ‘<제국의 위안부> 판매금지 및 가처분 신청소송 2차 심리’에 참석했다. 올해 2월 일본군 ‘위안부’ 문제를 카툰으로 그려 앙굴렘국제만화전 특별전에 출품했던 작가의 한명으로 마음의 빚이 남아 있기에 만사 제쳐두고 나갔다.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쪽 변호인은 “이 책(<제국의 위안부>)에서 밝힌 ‘매춘은 자발적이었다, 성노예였다, 일본군을 도와줬다, 일본군과 동지적 관계였다’ 등의 표현은 피해자들에 대한 명백한 명예훼손”이라고 주장했다. 저자 쪽 변호인은 명예훼손 의도가 없었으며 우리 사회에 이런 학술적 주장이 필요하고 공론화가 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책은 애초 목적이 있는 글로 채워졌다는 게 필자의 생각이다. 저자는 일본군과 정부가 사죄, 반성하지 않고 대신 만든 아시아평화국민기금을 두고 일본 정부 돈이 들어갔으니 일본 정부가 공식 사죄한 것과 다름없다거나, 일본 정부의 보상금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는 식의 주장을 편다. 그뿐 아니다.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증언집을 보면, 일본 순사와 업자가 같이 오거나 업자와 이장 혹은 면서기가 와서 사탕발림으로 소녀들을 유인하는 대목이 나오는데, 저자는 이것을 가지고 일본군이 직접 안 했다는 증거라고 강조한다. 정말 그럴까? 일본 정부의 정책이 있었고 그 정책에 따라 조선총독부는 각 도, 시, 군, 면, 리에 지시를 했기에 일본경찰, 면장, 이장 등이 나섰다는 것은 이미 다 아는 사실이다.

일본군 ‘위안부’ 숫자가 과장됐다는 표현 역시 터무니없다. 한반도에서 끌려간 소녀들은 주로 최전방의 일본군 야영지로 보내졌다. 오키나와는 물론이고 인도네시아, 필리핀, 말레이시아의 작은 섬까지 끌려가 상륙하다가 총상을 당하거나 수장당했다. 살아 남았다 해도 일본군과 함께 미군의 공습에 죽었다. 또 미군의 노리개가 된다며 일본군에 의해 다시 죽임을 당하고, 일본군 퇴각 때 다른 문서 등과 함께 ‘전쟁물품으로 소각’됐다.

프랑스나 독일에서 나치 찬양이나 홀로코스트 왜곡에 대해 엄벌하는 이유는 표현의 자유를 가장한 ‘진실의 왜곡’이 심각한 영향을 초래할 것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판매금지 가처분 소송을 이겨야 하는 이유다.

고경일 만화가·상명대 교수

광고

브랜드 링크

멀티미디어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광고


한겨레 소개 및 약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