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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05 18:36 수정 : 2014.11.05 18:36

박근혜 정부가 헌법재판소에 통합진보당 해산심판을 청구한 2013년 11월5일. 결코 잊지 못할 그날, 그 밤에 잠이 오지 않았고 한동안 말문이 막혔었다. 법에 규정되어 있다고 해서 정말로 정당 해산을 청구한 그 오만에 치가 떨렸고, 법의 이름으로, 민주주의를 수호한다는 명분으로 그런 무도한 짓이 빚어지는 것이 심히 모욕스러웠다. 그건 합법을 내세운, 국민에 대한 폭거였고, 정권에 의한, 민주주의 역사에 대한 쿠데타였다.

그 후 1년. 그 사이 불가피한 사정이 없으면 통합진보당 해산사건이 진행되고 있는 헌법재판소 심판정에 가서 앉아 있었다. 결코 용서할 수 없는 일이 버젓이 진행되고 있는 현장이었기에, 목도라도 해야 했다. ‘이것이 역사다’라고 입술을 깨물었다.

정당해산심판 청구라는 사건은 처음부터 작정하고 청구인 측에 의해 뻔한 북한 관련 사례로 구성되었다. 심판 과정은 통합진보당이 정당해산의 요건인 민주적 기본질서를 위배했는지 여부에 관한 논증에 의해서라기보다는, 피청구 정당과 북한과의 연계성에 대한 청구인 측의 집요한 주장에 의해 점철되고 있다. ‘진보’, ‘자주’, ‘민중’, ‘주체’, ‘인간해방’ 등의 말은 한국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말로 몰렸고, 한국이 미국에 ‘종속’된 상태라거나 한국에서 ‘착취’가 있다는 지적은 언감생심 거론할 수 없는 것이 되었다. 그 모든 것은 북한의 주장과 같거나 유사하다는 단순명쾌한 이유에서이다.

이 사건은 그저 친북 관련 법적 사안으로 수렴됨으로써 그에 대한 비판적 발언과 행동 역시 상당 부분 봉쇄되고 있다. 한국에서 ‘북한’은 흡사 블랙홀처럼, 근처에 있기만 하면 다른 모든 사안을 삼켜버리는 위력을 발휘하는지라 아무 소리 안 하고 가만히 있는 것이 상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고,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다분히 협소한 이해에 근거해 이참에 ‘거슬리는’ 소수적인 존재가 눈에 안 뜨였으면 하는, 그래서 편하게 비슷비슷하게 그저 살던 대로 살았으면 하는 비겁함이 작동했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리하여 정치적으로 사회적으로 시민들의 공간에서 심도 있게 논의되어야 할 일이 법정에 갇혀 버렸다.

그런데 이대로 심판정 안에서 이 사건이 굴려지게 놔두고 침묵한다면 이 못난 모습은 고스란히 사회와 개인들의 불행한 기억으로 새겨질 것이다. 만약 정당의 골격을 갖추고 공식적으로 체제 내에서 활동하는 통합진보당 정도도 용납되지 않노라고 법적으로 선언되어 버린다면 권력이 읊어주고 주입하는 것과 다른 방식의 자유와 정의, 민주주의를 떠올리는 것 자체가 어려워질 수도 있다. 그러므로 정녕 좀비가 아니라 인간으로, 자유인으로 살고 싶다면 지금, 법의 경계에 의문을 제기하고 그 안에만 갇혀 있지 않도록 사건을 다양한 방식으로 외부화해서 시민들의 사이 공간으로 가져와야 한다. 그럴 때 비로소 삶의 시간마저 법에 갇히지 않을 수 있을 것이다.

오정진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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