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4.11.10 18:43
수정 : 2014.11.10 18:43
오는 11월21일이면 새로운 도서정가제가 이루어진다. 지금까진 인터넷책방에선 하루 반값으로 책을 팔고 했는데 이젠 15%까지만 싸게 팔게 된다.
나는 명륜동에서 작은 책방을 22년 가까이 꾸리고 있다. 사람들은 어떤 물건이든지 싸게 사고 서둘러 쓰면 좋다. 책도 마찬가지다. 그러다 보니 동네책방들이 다 사라졌다. 언젠가 내가 사는 우이동에 오려고 미아네거리에서 걸어왔다. 5㎞ 남짓한 길을 걷는 동안 책방은 한 군데도 없었다. 일부러 골목길을 걷지 않았는데도 책방은 눈을 씻고 봐도 보이지 않았다. 어느 동네나 마찬가지다.
지난겨울에 내가 일하는 책방에 한국외국어대 생활도서관에서 책을 주문했다. 주문한 책들 가운데 반 가까이는 이미 내가 꾸리는 책방에 있는 책이다. 그만큼 책을 잘 골랐다. 내가 꾸리는 책방은 이 땅에 사는 낮은 사람들의 목소리를 들려주는 책들이 많다. 나는 반가움에 책을 갖춰서 외대 생활도서관에 손수 가져다주었다. 물론 책값은 정가다. 그때 외대 독일어과 학생이 한 얘기가 마음을 울렸다. 그 학생은 지지난해 여름, 독일 뮌헨대학에 공부를 하러 갔다. 독일어 책을 사려고 대학 앞 책방에 갔더니 그 책이 없었다. 집에서 인터넷으로 주문을 했다. 하지만 인터넷창에는 이렇게 써 있었다. “당신이 사는 곳에는 동네책방이 있으니 인터넷 주문이 안 됩니다. 동네책방에서 주문하시면 다음 날 받을 수 있습니다.” 학생은 놀라서 다음 날 대학 앞에 있는 책방에 가서 책을 주문했고 그곳 일꾼에게 물어보았다. “독일에선 동네책방을 지키려고 그렇게 하고 있어요. 책방이 없는 시골에서 책을 주문하면 책값은 정가로 하고 택배비도 주문한 사람이 부담해요.”
우리는 늘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스무 나라들을 따라가려고 한다. 그런데 도서정책도 꼴찌다. 미국과 일본을 빼면 대부분 나라들의 책값은 정가다. 책값 이윤도 40%다. 일본도 대학 안에는 책방이 없다. 우리나라는 대학교 안에만 책방이 있고 대학 밖에만 나오면 거의 없다. 독일 뮌헨대학 앞에는 새책방도 예닐곱개 있고 헌책방도 그만큼 있다.
물론 사람이 꼭 책을 읽어야 세상이 맑고 밝아지고, 사람 스스로가 맑고 밝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적어도 대학 앞에 책방이 없다는 것은 그 나라가 죽어 가고 있는 것이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불안은 영혼을 갉아먹는다”고. 지금 대학은 기업과 나라에서 힘을 쓰는 사람들 말을 잘 듣는 노예를 키우는 곳이 되었다. 대학은 이 땅에서 일어나는 일에 누구나 옳다고 말을 할 때 ‘아니’라고 ‘손’을 들고 외칠 수 있는 사람을 키우는 곳이 아닌가.
그러려면 동네책방이 살아야 한다. 15% 싸게 주든지 50% 싸게 주든지 그런 건 알 바 아니다. 책을 읽지 않고 있는 세상이 문제다. 책을 읽으려면 걸어서 5분 길에 작은도서관이 있어야 한다. 도서관에서 책을 읽고 그 책이 좋아 다른 이에게 책을 선물하고 싶은 마음이 자라면 동네책방도 산다.
동네책방이 사라지는 것은 슬프지 않다. 책도 사람들이 읽지 않으면 더 이상 나오지 않듯이, 사람들이 책도 인터넷책방에서 싸게 사면 동네책방은 사라진다. 그러나 동네에 복덕방, 머리방, 소주방, 전자놀이방만 보이는 나라는 좀 슬프지 않은가. 아이들 손을 잡고 책방으로 마실 나와서 “미선아, 이 책방은 아빠가 대학 다닐 때도 있던 곳이야. <어린 왕자>를 다시 읽었는데 세상이 달라 보이더라. 너 이 책 읽을래” 하며 책 한 권을 손으로 만지며 아이에게 건넬 수 있는 동네책방이 살아남았으면 좋겠다.
은종복 인문사회과학책방 풀무질 일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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