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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국민연금 운용과 지급 기능 분리는 ‘재앙’ / 오성근 |
지난 국정감사에서 국민연금기금의 지난해 운용실적(4.2%)이 세계 연기금들 중 꼴찌라고 지적받았다. 기금이 단기펀드도 아닌데 이해하기 어렵다. 기금은 우수한 단기실적보다 안정적인 장기실적이 중요하다. 영속적인 연금지급의무 때문이다. 1988년 국민연금 개시 이래 기금의 26년 연평균 누적수익률은 6.13%로 세계가 주목하고 있다. 더구나 비교 대상 중 국민연금과 기금 성격이 정확히 같은 것은 없다. 모두 직역연금이거나 국부펀드거나 퇴직연금이다. 이해당사자의 수가 다르고, 운용 결과가 미치는 영향의 폭과 깊이가 다르며, 운용 목적과 투자 전략이 다르다.
더욱이 비교만으로는 운용성과 개선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해가 될 수 있다. 비교는 경쟁을, 경쟁은 위험을 초래하기 쉽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의 특성과 지금의 투자환경을 제대로 알고 있었다면 그렇게 지적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번 지적의 발단은 아마도 경제전문지의 선정적인 꼴찌보도인 듯하다. 이번 일을 지켜보며 작은 일에 눈멀어 항상 큰 것을 잃고 마는 우리 사회의 생각 없음을 생각하는 것은 비약인가.
오해는 오해를 부르는 법. 이참에 국민연금공단에서 분리된 기금운용공사를 설립하자는 말도 나왔다. 국민연금에 대한 몰이해 탓이고 위험한 발상이다. 기금운용의 표준원칙인 자산부채관리를 차단시켜 자산 구성을 어렵게 하고 유동성 문제를 일으킬 것이 명약관화하기 때문이다. 독립법인 설립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이처럼 치명적인 결함을 안고 있다. 독립법인은 수익성 추구로 내몰릴 가능성이 커 재앙을 불러올 수도 있다.
지금의 보건복지부에서 기획재정부로 소관 부처가 바뀌면 위험은 더 커진다. 예산권을 가진 부처가 거대 기금도 관할하게 된다면 본래의 운용 목적에서 일탈된 유혹에 시달려 기금은 말할 것도 없고 국가 전체적인 리스크도 커질 수 있기 때문이다. 기금운용공사가 설립되면 공단은 징수 기능에 이어 운용 기능도 떨어져나가는 셈이다.
국민연금은 최소한의 노후 피난처다. 원칙을 지키는 데 있어서는 무엇과도 타협하지 말고 무자비해야 한다. 자산부채관리는 기금운용의 출발이다. 기금은 자산과 부채의 양면성을 가지기 때문이다. 납입액보다 지급액이 적은 지금은 크게 민감한 문제는 아니지만 간격이 좁아지는 것은 시간문제다. 모든 기금운용 담당자는 기금은 장차 가입자에게 모두 되돌려주어야 할 부채라는 것을 항상 유념해야 한다. 이러한 각성은 일시적이고 피상적이 아닌 상시적이고 본질적인 것이어야 한다. 기금이 들어와 머물다가 나가면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직접 눈으로 보고 머리로 생각하며 마음으로 느끼고 나서야 자신이 하는 일의 무게를 실감하고 옷깃을 여미게 될 것이다. 운용이 징수 및 지급과 함께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는 조직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자금 입출금 상황을 모르고서야 언제 얼마를 매입하여 얼마 동안 보유하다 언제 얼마를 매각할 것인지를 올바로 결정할 수 있겠는가. 기금운용 기능을 공단에서 분리해서는 안 되는 이유다.
기금운용 최상위 의결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가 전문성이 없다는 지적을 받아온 지 오래다. 실무조직은 그런대로 전문성을 갖추고 있으나 위는 그렇지 못하다. 세계로 분산투자하는 초대형 기금을 운용하는 조직치고는 초라하고 부끄러운 모습이다. 전문성을 갖춘 윗선이 전문가를 통제 및 관리하는 그런 지배구조로 탈바꿈해야 한다. 어렵게 생각할 것 없다. 현재의 기금운용위원회를 전문성 위주로 개편하여 공단 내부에 설치하면 된다. 그것이 기금 가입자 이익 보호가 극대화될 수 있는 최선의 방책이라고 믿는다.
오성근 전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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