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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17 18:46 수정 : 2014.11.17 18:46

5년을 넘게 기다려 온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 희망이 무산되었다. 회사의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며 법정 투쟁을 해온 노동자들의 주장과 달리, 대법원은 13일 ‘2009년 쌍용차 정리해고는 회사의 긴박한 경영상 필요에 따른 것’이라고 판결했다. 이로써 해고노동자들의 복직에 대한 마지막 기대가 물거품이 되었다.

2009년 4월 정리해고가 단행된 이후 해고노동자들은 눈물과 한숨으로 세월을 보냈다. 동료와 그들의 가족 25명이 지병과 생활고로 목숨을 끊는 아픔 속에서도 복직에 대한 희망을 잃지 않고 법정 투쟁을 해왔던 해고노동자들은 복직에 대한 마지막 희망이 대법원 판결로 무산되자 할 말을 잃고 눈물만 흘렸다.

대법원 건물을 나오며 기름때 묻은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눈물을 흘리는 그들의 모습에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생계를 잇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끼니를 해결하기 위해 도둑질을 해야 하는 절박한 사람들이 늘어나는 현실에서, 또 거리로 내몰리는 그들의 모습이 그려졌기 때문이다.

우리 사회는 1997년 외환위기 이후 경제적인 이유로 가정이 해체되고 가족이 흩어진 경우가 빈번했다. 가족의 생계를 책임진 가장이 일자리를 잃고 거리를 떠돌자, 가장 대신 주부들이 가족의 생계를 위해 발 벗고 나서야 했다. 가장만 믿고 살던 주부들이라 갖은 고생과 수모를 겪어야 했고, 그것을 견디지 못해 더러는 가족을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어린 자녀들까지 생활전선에 내몰리기도 했다. 목숨을 부지하기 위해 서로가 등을 지기도 하고, 눈물을 삼키기도 했던 것이다. 그것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아니 더 심화되었다. 생계를 잇지 못해 목숨을 끊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자리를 잃고 길거리로 내몰린 40~50대 가장들이 늘어나고, 취업을 못해 자살하는 젊은이들도 많아졌다.

이러한 현실에서 쌍용차 해고노동자들의 눈물은 우리를 더욱 안타깝게 한다. 그들의 눈물이 단지 그들만의 눈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일자리를 잃고 끼니를 걱정해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눈물이고, 피맺힌 절규이자 항변인 것이다. 그런데 그들의 피맺힌 절규에 귀를 닿는 사람들이 너무 많다.

대법원은 ‘쌍용차 정리해고가 부당하다’는 고등법원의 판결을 파기하고, ‘당시 정리해고가 긴박한 경영상 필요했다’며 복직을 바라는 노동자들의 간절한 호소에 귀를 닫았다. 대법원뿐만 아니다. 언론과 정부, 기업인들도 근로자들의 간절한 호소에 귀를 닫고, 그들의 눈물을 보지 않는다. 한 보수언론은 ‘대법원 판결을 함부로 매도하는 것은 법치주의 근간을 뒤흔드는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호소에 귀를 닫았고, 정부와 기업인들은 아예 귀를 닫고 눈을 감았다. 일자리는 밥줄이고, 일자리를 잃는 것은 밥줄을 끊는 것인데도 노동자들의 호소에 귀를 닫은 것이다.

생계를 이어갈 밥줄이 없는 사람은 사회 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하기 어렵다. 먹는 것이 해결되어야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우리 국민 모두가 인격을 지닌 사람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정치인의 책무이고 사명이다.

일찍이 맹자는 ‘백성을 먹고 살지 못하게 만들어 죄를 짓게 해놓고, 죄지은 백성을 형벌로 다스리는 것은 그물을 쳐놓고 백성을 잡는 것’이라 했다. 국민을 위해서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들이 그물을 쳐놓고 국민을 잡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

일자리를 잃고 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이 삶의 끈을 놓지 않도록 그들의 손을 잡아주고 눈물을 닦아주어야 한다. 그들의 눈물을 방치하여 사회적 불행을 야기하는 일을 사전에 막아야 한다. 쌍용차 해고노동자의 눈물은 그들만의 눈물이 아니고, 일자리를 잃은 우리 사회 모든 사람들의 눈물인 것이다.

조구호 남명학연구원 사무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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