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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카트, 그 찬란한 ‘실패의 서사’에 대해 / 박범준 |
<명량>은 우리나라 역대 최다관객 수인 1700만명을 동원한 영화다. 명량 이전에 최다 관객 영화가 대략 1300만명을 동원한 영화 <도둑들>인 것을 보면, 1700만이라는 수치가 얼마나 대단한 것인지 알 수 있다. 명량의 흥행을 둘러싸고 여러 분석이 존재하지만, 나는 일단 서사적인 측면에서만 명량을 설명하고 싶다.
명량의 서사는 그래프로 표현한다면, 상승곡선이다. 1597년(임진왜란 6년), 파면당했던 이순신은 다시 조선 수군을 이끌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된다. 절망적인 조선의 상황 속에서 왜군은 승승장구하고, 이순신에게는 오직 12척의 배만 남았다. 이순신은 백성과 자신을 믿고 따르는 수군들과 함께 330척의 왜군에 맞선다. 영화는 물론 조선 수군이 승리를 거두면서 끝나게 된다. 관객들은 이순신의 인생 그래프 중 가장 밑바닥에서 명량해전 승리의 찬란한 정점까지, 그 승리의 궤적을 밟아가며 일종의 카타르시스를 느낀다.
승리의 서사는 매력적이다. 삶을 포기하고 싶게 만드는, 극도로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서사의 주인공인 한 인간이 서 있다. 그가 버겁지만 분명하게 역경을 극복해가면서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보는 이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한다. 또한 승리의 서사는 영화제작자들에겐 일종의 ‘안전빵’이기도 하다. 관객들은 만원 돈과 두 시간이 넘는 시간을 투자해서, 패배감을 느끼면서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하지 않는다.
최근 영화 <카트>를 보았다. 이상하게 영화관에 여학생들이 많다 했더니, 영화에 조연으로 엑소의 디오가 나온단다. 엑소 때문인지, 대한민국의 많은 ‘을’들이 봐주었기 때문인지는 모르겠지만, 카트는 개봉 5일째인 현재(18일) 42만 관객을 동원하며, 순풍을 타고 있다.
카트의 서사는 명량의 그것과는 반대된다. 실패의 서사, 하강의 서사이다. 매일 아침,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라는 구호를 외치며 성실히 근무해온 마트의 여성 비정규직 노동자들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을 위기에 처한다. 노동자들은 노조를 구성해 회사의 부당해고에 맞서지만 상황은 점점 악화된다. 회사는 노조의 지도부에 손해배상을 청구하고, 용역을 동원해 마트 앞에 세워진 천막들을 때려 부순다. 밥벌이를 보장받고자 시위를 했던 여성들은 다시 밥벌이를 위해 하나둘 떠나고, 노조는 힘을 잃고 와해된다.
절망적인 주제를 담고 있는 영화지만 영화가 내내 어둡기만 한 것은 아니다. 마트를 점거한 첫날, 아줌마들의 표정은 오히려 밝다. 밥 달라고 징징대는 남편과 아이들이 없어서다. 박스 포장용 테이프를 길게 묶어 줄넘기를 만들어 놀고, 공놀이도 하고, 노래도 개사해서 부른다. 계산대 아래 좁은 공간에 종이박스를 깔고 누우며, “계산대 아래서 자보기는 또 처음이네” 하며 밝게 웃는다.
독일의 역사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제바스티안 하프너는 인간의 위대성에 대해 이런 말을 남겼다. “인간을 세계기록에 도전하는 운동선수에 비유한다면 그 선수가 온 힘을 다해 성취할 수 있는 최대치”가 바로 위대성이라고. 그렇다면 이순신 장군이 12척의 배로 이룩했던 찬란한 승리의 최대치와 마트의 노동자들이 카트를 끌며 전경의 방패와 물대포에 저항하며 이룬 처절한 실패의 최대치는 공히 인간의 위대성을 보여주는 증거로서 제시될 수 있을 것이다. 둘 중 어떤 서사가 더 낫다고 감히 말할 수는 없지만. 나는 승리의 서사보다는 패배의 서사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생존해야만 하는 인간의 존엄성을 더욱 극명하게 보여주기 때문에, 더 빛난다고 말하고 싶다.
박범준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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