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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1.24 18:45 수정 : 2014.11.24 18:45

수능이 끝났다. 입시는 끝나지 않았지만. 주변에서 많은 연락이 왔었다. 문득 수능이 뭐 그리 큰 국가적 행사길래라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규모가 큰 재수학원을 9개월 동안 매일같이 다녔다. 고3 때는 상상도 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양을 공부했다. 사용한 교재만 50권가량이다. 부모님은 나를 위해 천만원가량을 쓰셨다. 학원에서는 달마다 시험 친 등수로 학원비를 덜어줬지만 나는 해당사항이 없었다.

나는 늘 밖에 나가고 싶었다. 학원 앞 호수공원을 한 바퀴 돌아보는 게 소원이었다. 학원에서 외출, 조퇴는 허락받아야 했고 떠들 수 없었다. 이건 나 자신과의 싸움이라는 생각으로 잠을 버티고 먹는 것을 참고 미치도록 뛰어다니고 싶은, 치밀어오는 우울감을 억눌렀다. 옥상에서 하늘을 보는 게 그렇게 서러운 일일지 몰랐다. 수능 공부를 다시 하면서 느끼지만 참 좁고 딱딱한 공부였다. 진짜 공부는 이것보다 재미있을 텐데 내가 하고 싶은 공부는 이게 아닌데. 난 솔직히 학원에서 공부하면서 희열을 느낄 때도 있었다. 근데 그 생활에 맞추기까지 많이 울어야 했다.

사실 나에게 긴 학원생활을 견디라 한 것은 나 자신도 선생님도 아닌 소위 ‘높은 어른들’이란 사람이 아니었을까? 끊임없이 자신을 추종하고 칭찬해줄 관중이 필요하잖아. 우리는 관중으로서 사육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이 어른들도 알고 보면 너무 많은 것을 가져서 불안해하는 사람들이 아닐까? 참 불쌍하다.

나는 청소년이라는 이유로, 아직 세상을 잘 모른다는 이유로 9개월을 감시받고 침묵당한 채 책상에 묶여야 했다. 도대체 왜? 나와 내 친구들은 이것을 당연하게 여긴 거지? 우리나라만 나가도 길 가는 외국인 붙잡고 나 스카이(SKY)라고 자랑해 봐. 아무도 몰라. ‘그들’의 무대에서만 박수 받을 수 있을 뿐이다. 이제 그러지 말자. 뛰쳐나갈래. 정말 돌아버릴 것 같거든. ‘그들’이, 성적이, 대학이, 부모님들이 우리에게 멋대로 내리는 평가를 비웃자. 의연해지자. 슬퍼하지 말자. 자책하지 말자. 착하게 살지 말자. 어쨌든 수고한 우리 자신을 보듬어 주고 즐거운 마음으로 놀자. 혜영아, 같이 펜싱 하고 탭댄스 배우자고 그랬잖아. 우리 진짜 하고 싶었던 공부를 하자. 너는 역사 좋아하니까 써둔 박물관리스트 다 가보고 나는 농사 좋아하니까 농사 공부할게. 혜영아, 수험생들아, 슬퍼하지 마.

박소현 경기 고양시 행신3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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