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09.25 18:37
수정 : 2005.09.25 18:43
독자칼럼
1970년대 맥아더와 관련해 웃지 못할 해프닝이 있었다. 어느 무당이 맥아더를 무속신으로 삼아 양담배를 공양하다 당시 양담배를 팔지 못하는 법률에 걸리고 말았다. 아무튼 맥아더를 무속신으로 삼을 정도였으니, 당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그에 대해 가진 공경심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알 만하다.
우리나라는 국가적 차원에서 그에게 공경심을 표하기도 했다. 1957년에 이승만은 인천의 자유공원에 맥아더의 동상을 건립했다. 3년 뒤 4·19혁명으로 이승만은 물러났지만, 시위 군중은 그날 인천까지 가서 맥아더의 목에 화환을 걸어놓고 왔다.
외장(外將)으로서 살아있는 전설이 된 사람은 맥아더가 처음은 아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을 지원하러 온 명나라 장군 이여송 또한 조선의 조정으로부터 생사당(살아 있는 사람을 위한 사당)까지 헌납받았다. 그러나 그는 조선 백성에게 짐승만도 못한 존재였다. 평양성 전투의 승리를 과장하기 위해 조선인의 목을 잘라 앞머리를 깎은 뒤 왜구의 주검들 사이에 넣어 적군 주검 수가 두 배인 것처럼 보이게 했다. 오죽하면 백성들이 명군이 오기 전에 왜군이 오지 않았음을 한탄하기까지 했을까.
오늘날 미군이 명군만큼 민중에 의해 증오받지는 않는다 하더라도, 지금껏 미군이 저지른 수많은 범죄는 여전히 우리의 가슴을 죄어온다. 포르말린을 한강에 버린 사건부터 최근 미선·효순의 안타까운 죽음에 이르기까지, 미군의 행태는 크게 나아지지 않고 있다. 국민의 가슴에 쌓인 분노가 서서히 폭발하며 맥아더 동상 철거 사건으로 이어진 것은 아닐는지.
무조건 은인이니 광인이니, 친북이니 자주니 하는 논쟁에 휘말려 우리끼리 상처 입히는 우를 범하지 말아야 한다. 외래 군대가 한 해도 빠짐없이 우리나라에 주둔한 지 120년째 되는 해, 이 사건이 한-미 관계를 민중의 서러움이라는 관점에서 살펴보는 전기가 되어보길 희망한다.
김혜성/경기 성남시 수정구 태평1동·취업준비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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