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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4.12.18 18:37 수정 : 2014.12.18 18:37

세월호 참사 이후 지금까지 독일에서는 매달 추모행사가 열리고 있다. 내가 사는 뮌헨에서도 열린다. 모임에 참가하면서 나는 피해자 유가족이 재판 과정에서 ‘공소참가권리’를 인정받는 문제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래서 독일 형사법의 ‘부(副)기소인제도’를 소개하고 싶어 이 글을 쓴다. 한국에선 비슷한 제도를 ‘부대공소’라고 부른다고 하는데, 주기소인인 검사와 다른 역할을 부각시킨다는 의미에서 독일어 직역을 사용하겠다.

세월호 참사의 경우 진상조사를 위해 피해자 유가족들이 독립된 수사권과 기소권을 요구했으나 결국 수용되지 않았다. 이를 계기로 한국에서 피해자들의 권리가 과연 충분히 인정되고 있는가 심각하게 생각해 보아야 한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그들의 권리가 제대로 인정받고 올바로 강화될 수 있는 길을 찾아야 하지 않을까?

한국에도 피해자의 공소참가권리로 배상명령제도가 있는데, 그 전제조건은 피해자의 손해배상 신청이다. 그래야만 재판 과정에서 증거조사에 참여할 권리가 생긴다. 이와 달리 독일의 부기소제도는 재판 절차에서 피해자가 손해배상을 신청하지 않고도 공소에 참가할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즉, 피해자나 피해자 가족은 재판 과정에서 부기소인 자격을 가질 수 있으며, 제한적이지만 수사권과 기소권을 발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법적으로 보장받고 있다. 물론 부기소인들은 독립적인 수사권과 기소권을 갖는 것이 아니고 국가를 대변하는 검사의 기소를 전제로 그에 수반하여 검사의 공소제기를 감독·견제하고, 독자적으로 사건의 진실규명에 관여할 수 있다. 물론 대부분의 경우 피해자나 그 가족은 법에 익숙지 못하므로 흔히 변호사가 대리한다.

독일에서 이 제도가 어떻게 활용되는가를 생생하게 보여준 예가 현재 진행되고 있는 나치지하단체(NSU)의 외국인 살해에 관한 대형 형사재판이다. 이 극우조직은 2000년부터 11년간 9명의 외국인과 1명의 경관을 살해했고 2번에 걸친 폭탄테러를 저질렀고 여러 은행을 강탈하였다. 하지만 극우단체의 행위라는 수많은 암시와 증거에도 불구하고 경찰은 이 사건을 외국인 범죄조직의 행위라고 일방적으로 규정하고 엉뚱한 방향에서 수사하였다.

독일 국민이 더 아연실색한 것은 국가헌법보호청(한국의 국가정보원)이 극우단체의 소행임을 이미 알고도 정보를 공개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뿐만 아니라 헌법보호청의 끄나풀들이 살해사건에 깊숙이 관여했으며 결과적으로 국가의 돈으로 극우단체를 키운 사실도 드러났다.

2011년 사건의 진실이 우연히 발각된 뒤 연방의회와 여러 지방의회의 특별조사위원회가 진상조사에 나섰고 2013년부터 재판이 열리고 있다. 이 재판에 피해자 가족과 그들을 대리하는 변호사 등 총 77명의 부기소인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해 범죄의 진실규명에 큰 역할을 하고 있다. 이를테면 2006년 카셀시의 인터넷카페에서 터키인 주인이 살해되었을 당시 정보부 직원이 그 장소에 있었던 사실을 밝혀낸 것은 부기소인들이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이 제도를 통해 각종 범죄사건의 피해자와 그 가족들이 물질적 피해와 정신적 고통을 수동적으로 감내하는 단순한 희생자에서 자신들의 인권과 존엄성을 적극적으로 옹호하는 자율적 주체로 거듭나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한국의 현행법은 피해자들의 공소참여권리를 극히 제한적으로만 인정하고 있는데, 이제 우리도 인권의 보편성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가야 하지 않을까.

강정숙 독일 뮌헨 거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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