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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그들이 처음 왔을 때” / 김동수 |
헌법재판소는 통합진보당을 ‘종북’ 정당이라 규정했다. 헌재가 ‘종북 구분법’을 제시하자 종북몰이의 광풍도 함께 몰아치고 있다. 보수단체는 진보당 소속 당원 전부를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검찰에 고발했다. 아르오(RO)가 진보당과 동일시된 결과다. 새정치민주연합은 종북숙주 논란에 빠졌다. 일반 시민도 자유롭지 못할 것이다. 수많은 ‘나’들이 카카오톡 등의 채팅방에서 진보당 소속 당원과 대화를 나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도, ‘잠재적’ 국가보안법 위반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종북은 이제 나와 생각이 다른, 특히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진보·개혁 세력을 압박하는 수단으로 그 의미를 확장해 나갈 것으로 보인다. 이미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노동자들이 다시 일하고 싶어서 70m 굴뚝 위에 올라가도, 유가족과 시민들이 세월호 사고에 대한 진실 규명을 요구해도, ‘종북좌파’라 불리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나 역시도 이런 종북몰이의 대상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감이 있다. 나는 스스로를 진보·개혁적이라 생각한다. 단순히 우리 주변의 노동자에게 관심이 많고, 기본소득 제도에 흥미를 가진, 조금은 진보적이고 개혁적인 성향의 시민이자 학생이다. 물론 진보당이 그동안 보여줬던 대북관과 정치 행태에는 매우 비판적이다. 그런데도 헌재의 정당해산 결정 이후에는 내 정치적 성향 때문에 괜히 진보당과 엮일까봐 두려워진다. 말 한마디 잘못했다고 종북주의자로 매도될까봐 불안해진다. <자본론>을 읽었다고 신고당할까봐 초조해진다. 그 결과 끊임없이 자기검열을 해야 한다. 사상의 다양성이 훼손되고, 말과 글에 족쇄가 채워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우리 사회는 그렇게 ‘겁쟁이’들의 세상이 되어간다. 그래서일까. 근현대사 수업 시간에 잠깐 들었던 긴급조치 시대의 ‘막걸리 보안법’이 생각난다.
이제는 김정은 욕을 하며, 자신은 종북이 아님을 스스로 증명해야 한다. 21세기판 인민재판의 시대다. 걸핏하면 종북이라 몰아붙이는 세상이 되고 있는 만큼 아예 침묵하는 것이 이 시대의 생존 방법일지 모르겠다. 갑자기 마르틴 니묄러의 ‘그들이 처음 왔을 때’란 시가 떠오른다. 이런 공안몰이에 지레짐작 겁먹고 침묵하는 대신, 더 자유롭게 ‘표현’하고, 또한 ‘결사’해야 한다. 그래야 진보당발 매카시즘의 광풍에서 벗어날 수 있다.
김동수 광운대 재학·경기도 안성시 혜산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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