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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듣기에만 좋은 ‘새해 인사말’ / 김세영 |
새해인사 하기 바쁜 요즘이다. 일상에서 많이 주고받는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를 시작으로 고등학생에겐 “수능 대박 나라”, 대학생에겐 “좋은 데 취직해라”, 30~40대 사이에선 “돈 많이 벌어라”와 같은 인사말을 건네고 받는다. 나에게 누가 이런 말들을 하면 듣기엔 좋다. 인사 나누는 상대방과 친근감을 더 느끼기도 하고 인사말을 하는 상대가 동생이나 후배라면 내가 형으로서 선배로서 존중받는 생각도 든다. 설사 인사말 건네는 사람이 진심으로 하지 않았다고 해도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기분 좋아지게 한다면, 그 말에 어느 정도의 가치는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요즘엔 그런 말들을 듣는 게 마냥 기쁘지만은 않다. 별로 의미 없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필자가 20대라서 주위 사람들에게 ‘대기업 가고, 부자 되라’는 인사말을 하면서도 가슴 한편이 씁쓸하다. 누군가에게 수능 대박은 누군가에겐 수능 쪽박이다. 누군가에게 대기업 입사는 누군가에겐 취업 실패다. 누군가의 소득은 누군가의 지출이다. 어차피 제로섬 게임이다. 또 우리 사회에서 ‘윈윈’(win-win)이란 말만큼 허황된 말도 없다. 윈윈 하는 관계가 있으면 둘의 윈윈으로 인해 제3자 누군가는 패배하게 마련이다. 어차피 모두 다 대박 나고 부자 될 수 없는 걸 뻔히 알면서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이런 인사말을 주고받는다. 알맹이 없는 한국식 소통문화라 할 것이다.
사회경제 여건을 봤을 때 우리 세대는 예전보다 더욱 대기업 직원이나 부자 되기가 확률적으로 어렵다. 최근 마이클 샌델의 <정의란 무엇인가>, 토마 피케티의 <21세기 자본>이 대중들에게 주목받는 현상만 보아도 이를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위의 인사말들은 실체 없는 메아리에 지나지 않는다. 현실에서 희소하고 실현 불가능한 것들일수록 욕망하는 인간들의 본능은 알겠으나, 이런 삭막한 현실의 실제적 변화 없이 허황된 말들만 오가는 한국 사회의 인사말과 덕담 문화가 더 이상 반갑게만은 느껴지지 않는다.
‘듣기 좋은 인사말’이 사람들의 입에 자주 오르내리는 사회는 사람들이 그것을 더 욕망하는 것이고 현실에서 실제로 해내기가 어려운 사회일 것이다. 사회구조 개선에 대한 의지 없이 거대 자본 밑에 있는 울타리 안에서 우리끼리 올라가고 내려가기를 반복하는 사회. 이에 대한 비판의식 없이 눈앞에 보이는 더 높은 고지를 향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올라가려고 하는 사람들. 그로 인해 아래로 굴러떨어진 다른 사람을 보살피기엔 너무 힘든 현실이 팍팍하고 야속하게만 느껴진다. 올해는 이런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을 가지는 시민이 많아졌으면 한다. 또 우리가 주고받는 ‘새해 인사말’들이 내 삶과 다른 사람들의 삶에서 조금 더 실행 가능해졌으면 한다. 그래서 필자는 이와 같은 염원을 담아 이제부터는 새해인사말을 ‘건강하세요’란 말로만 하려고 한다. 건강은 행복과 직접 연결되어 있으며, 또한 노력한 만큼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2015 을미년에는 새해 모두 건강하게 지내시길.
김세영 서울시 광진구 능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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