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07 18:58
수정 : 2015.01.07 20:24
|
일러스트레이션 김선웅
|
[왜냐면]
지난 3주간 방송된 <무한도전>의 ‘토토가’가 30%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면서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끌었다. 무한도전이 논란에 시달리다 내놓은 히트작이란 이유도 있겠지만, 이 프로그램이 되살린 90년대의 음악도 큰 몫을 하였다. 프로그램에 나온 음악에 대한 갑작스러운 관심을 복고의 관점에서 보기도 하고, 요즘의 아이돌에 대한 반발이라고 하면서, 90년대의 음악 다양성을 재평가하는 평자들도 있다. 모두 맞는 말일 것이다.
하지만 필자는 프로그램을 보면서 마음이 항상 편하지는 않았다. 신나는 음악과 무한도전 특유의 촘촘한 재미를 즐기면서도 무언가 빠진 듯한 느낌이 들었다. 가장 큰 이유는 무한도전이 보여준 90년대는 결국은 90년대의 한 부분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가수의 선택에서도, 그 가수의 선곡에서도 무한도전이 들려준 노래들은 2014년 한 상업방송이 선택해서 본 1990년대이다.
예를 들면, 가수 조성모를 들 수 있다. ‘발라드의 황태자’라 불리는 조성모는 자신의 발라드 명곡을 외면하고, 빠른 비트의 노래들만 토토가에서 불렀다. 아마 다른 댄스 가수들과 보조를 맞추기 위해서 그랬을 수 있다. 하지만 한 가수에 국한된 문제는 아니다. 출연 가수들의 선택에서도 그렇다. 물론, 출연을 거절한 가수들도 있었겠지만, 90년대 한국에는 다양한 가수들이 있었다. 김종서 같은 록 가수에서 이소라, 김동률 같은 발라드 가수. 패닉도 있었고, 공일오비도 있었고. 또 안치환, 윤도현, 그리고 김광석까지.
그렇다면 토토가가 본 90년대는 어떤 90년대일까? 간단히 말하면, 토토가에 나온 90년대는 클럽과 춤과 사랑만이 있는 시대로 보였다. 지누션의 ‘에이요’(A-Yo)가 그나마 아주 짧게 유전무죄의 시대에 대해 말했을 뿐, 90년대로의 여행은 그렇게 유희와 향락으로 차 있었다. 그렇지만 내가 아는 90년대는 80년대까지의 군사문화를 걷어내면서 노동과 통일을 화두로 사회가 변화를 겪던 시기였고, 구제금융의 고통으로 마감한 때였다. 대중음악에서도 이런 변화들을 발라드로, 록으로, 포크로 소화하고 반항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렇다면 토토가는 왜 이렇게 90년대를 기억하려 할까? 첫째는 현재는 과거를 현재의 관점에서 기억하기를 원한다는 것이다. 세상의 문제가 어떻게 되든, 신나는 비트에 단순한 가사로 사랑을 노래하는 아이돌 그룹이 지배하는 지금의 대중문화는 90년대도 지금의 잣대로 그렇게 기억하려고 하는 것이다. 그래서 90년대를 클럽 가서 춤추며 살지 않으면서도 대중음악을 즐겼던 사람에게 이런 식의 90년대는 낯설어 편할 수 없다.
그다음으로, 자막을 통해 끊임없이 나타나는 음원 판매 광고를 빼놓을 수 없다. 토토가에 나오는 음악으로 부수입을 올리려고 하는 티브이 방송사는 90년대도 상업적인 것들을 받아들이는 게 가장 편안하고 손쉬울 것이다. 방송 이후, 음원 차트들을 도배하고 있는 ‘토토가 노래들’을 보면 90년대와 요즘 상업방송 사이의 상생을 확인할 수 있다. 경제적 이익이 지상의 목표가 된 텔레비전이 90년대 흥행 대중음악과 손을 잡은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런 상업화를 90년대에 걱정했던 사람은 여전히 토토가가 즐겁지만은 않은 것이다.
누군가 ‘하찮은 티브이 프로그램을 가지고 뭐 이렇게까지’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무한도전은 30%가 넘는 시청률을 기록하고 특히 젊은이들에게 인기가 있는 프로그램이다. 그들에게 이런 프로그램은 90년대를 경험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창일 수 있다. 그래서 텔레비전이 회상하는 90년대는 직접 산 90년대와 다를 수 있다는 점을 꼭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헌율 서울시 서초구 신반포로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