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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생쇼’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 신혜림 |
며칠 전 알바 퇴근 시간을 30분 당겼다. 혼자 일하는 시간이 늘어나게 된 동료 오빠가 어디 가느냐고 물었다. 나는 밀양에 간다고 답했다. 그러자 오빠는 ‘밀양을 가는 내게’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었다. “돈 더 받아내려고 하는 쇼인 거야. 휘둘리고 오면 안 돼.”
그 쇼의 현장에 갔다 왔다. 경남 밀양시 상동면 고정리 고답마을 115번 송전탑 옆에서 열리고 있는 농성장이다. 작년 6월 행정대집행 이후 무럭무럭 자란 송전탑은 시험송전을 시작했고, 잠잠했던 고답마을은 다시 불붙었다고 했다. 지척에 살면서도 졸업할 나이가 되어서까지 살펴보지 않은 내가 부끄럽던 참이었다. 하지만 좀더 솔직히 말하자면, 이번 밀양행은 무언가를 확인하고 싶어서였다. 추운 겨울에 살날도 얼마 남지 않은 어르신들이 지금까지도 산속에서 밤을 지새우고 있는 진짜 이유를 알고 싶었다. 결국 나 역시 오빠와 크게 다르지 않은 그런 생각으로 밀양 버스에 올랐다.
주민 30여명, 참가자 30여명 남짓한 사람들이 산기슭에 모였다. 한전은 며칠 전 이곳의 전기를 끊었다. 300m 떨어진 가정집에서 전기를 끌어다 집회는 시작되었다. 새로 유입된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이제는 철 지난 이슈라는 걸 방증했다. 사람들은 서로가 익숙해 보였고 한목소리로 노래를 불렀다. 군데군데서 할머니들의 쌍욕이 튀어나왔다. “이 개놈만도 못한 한전 새끼들!” 나는 혼란스러워졌다. 전날 신문에서 보았던, 할머니들이 목에 밧줄을 걸고 울부짖던 사진이 생각났다. 이방인의 시선에서 그들의 감정은 조금은 과잉돼 있었다.
이어서 할머니들의 72시간 순례 영상이 나왔다. 몇 주 전 할머니들은 추운 겨울에도 매일같이 울부짖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러 전국을 돌았다. 부당하게 회사에서 쫓겨나 싸우고 있는 해고노동자들, 산을 깎고 골프장 짓는 걸 막고 있는 주민들, 세월호 유가족들. 할머니들은 그들의 움막을 하나하나 찾아 칼바람이 해친 손을 움켜쥐었다. 어떤 손의 주인은 매일같이 굴뚝에 올라 새해를 하늘에서 맞았고, 또 어떤 손은 단식 투쟁으로 한없이 앙상해져 있었다. 정말이지 모두가 쇼를 하고 있었다.
말 그대로 생(生)쇼다. 죽지 못해 사는 사람들이 살아보려고 벌이는 쇼다. 가끔은 그 쇼의 일환으로 죽음을 선택하는 아이러니가 벌어지기도 한다. 이익을 취하려 한다며 일부에게 비난받으면서도 이 땅에서 생쇼가 멈추지 않는 이유는,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단 낫기 때문이다. 변화의 가능성이 점점 줄어드는 시대지만 아직은 가뭄에 콩 나듯 희망으로 보답받는 사례가 나타난다. 할머니들이 손을 꼭 잡고 돌아온 사람들 중 일부가 끝내 결실을 보는 데 성공했다. 주간 2교대의 혹사를 멈춰달라고 주장하다 해고당한 유성기업의 노동자들은 사측의 노조파괴 혐의를 인정받았고, 하루아침에 실직자가 되었던 씨앤앰 비정규직 노동자들도 일자리를 되찾았다. 불현듯 해군기지로 탈바꿈하고 있는 엄마의 고향 강정이 떠올랐다. 나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그들은 바로 어제의 부모였고, 미래의 나였다.
집에 가기 위해 일어났다. 두 시간이나 앉아 있었을까. 꽁꽁 얼어버린 발은 몸을 지탱하기 힘들었다. 자리에서 일어서자 언덕 밑으로 송전탑을 둘러싼 형광색 무리가 보였다. 50여명이 모여 노래 몇 곡 부르고 영상 보다 끝난 집회에 출동한 경찰이 족히 이백은 되어 보였다. 대체 무엇이 쇼이고 무엇부터 과잉된 것일까. 입이 떡 벌어져 있는 내 뒤에서 아까 ‘한전 새끼들!’이라 외쳤던 할머니가 웃으며 말했다. “참 재밌는 세상이제?” 나는 무언가 할머니에게 말하고 싶었지만, 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할머니는 ‘추운데 와줘서 고맙다’며 손난로를 꼭 쥐여주었다. 나도 얼떨결에 입을 열었다. “저도 고맙습니다….”
신혜림 부산시 금정구 장전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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