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15.01.15 18:55
수정 : 2015.01.15 18:55
세월호 참사를 두고 진보진영의 많은 사람들은 그 사건의 원인으로 신자유주의를 꼽기도 한다. 하지만 이런 이해방식은 거대 이론을 정교하지 못한 방식으로 남용하는 것으로, 커다란 문제를 협소한 시야에 가두는 것을 ‘총체적인 이해’라고 착각하는 진보진영의 약점을 드러낸다.
<한겨레>는 지난 2일 지주형 교수의 논문 ‘세월호 참사의 정치사회학’(<경제와 사회>, 2014년 겨울호)을 온라인 뉴스로 다뤘다. 보도를 보면, 지 교수는 세월호 승무원 대다수가 단기계약직이었다는 사실을 지적하면서 비정규직 선원과 선장한테는 애초부터 책임감 있는 행동을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주장했다. 많은 진보진영에서 폭넓게 받아들이는 주장이다. 얼핏 그럴듯하지만 자세히 따져보면 문제가 많다.
고용이 안정화할수록 노동자들의 직장 충성도가 높아지리라는 추측은 타당하다. 세월호의 선원과 선장은 비정규직 노동자였고 직장에 대한 충성도가 낮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런 까닭에 그들이 책임감 있게 행동하기는 어려웠다고 주장하는 것은 심각한 논리적 비약이다.
뛰어난 직업윤리를 보여주었던 승무원 고 박지영씨가 비정규직 노동자였다는 점을 생각하지 않더라도, 정규직 노동자였던 세월호의 1등 항해사나 청해진해운의 육지 사무직 노동자들이 배가 침몰하려 하자 했던 일이 승객 안전 보호가 아니라 ‘직장의 손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화물 물량의 조작이었다는 사실은 뭘 의미하는가. 높은 직장충성도가 반드시 직업윤리를 담보할 수 없다는 얘기다.
비정규직 노동자한테 책임 있는 모습을 기대하기 힘들었다는 주장은 오히려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한 부당한 차별을 정당화하는 것은 아닐까. 사용자들은 비정규직이 게으르고, 무책임하고,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고 주장한다. 이런 ‘신자유주의’적인 편견을 무비판적으로 내면화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요컨대 세월호 참사에서 선원과 선장들의 무책임함은 그들의 직업윤리 부재에서 유래한 것이지, 고용조건에 따른 직장충성도와는 별 관련이 없다.
선박연령 규제 완화나 부실감독 문제가 드러내는 ‘정부 실패’는 일부 신자유주의와 관련이 있을지도 모른다. 우리 정부와 대통령은 유족들과 긴밀한 소통을 하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은 채, 제대로 된 위기관리 능력도 보여주지 못하고 우왕좌왕했다. 급기야 해경 해체와 국가안전관리처 신설이라는 엉터리 대책을 내놨다. 우크라이나에서 격추된 말레이시아 항공기에서 희생된 자국 국민의 아픔을 달래기 위해 네덜란드 정부가 보여줬던 모습은 한국 정부의 모습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 네덜란드는 복지시스템이 잘 갖추어져 있기는 하나 세계에서 가장 유연한 노동시장을 가지고 있는 나라다.
신자유주의의 최전선이라고 할 미국에서 규제 완화로 인해 배가 뒤집어졌다면, 미국 정부는 어떻게 했을 것인가? 신자유주의 정부라도 능력이 있다면 유족들의 아픔을 달래는 동시에 적절한 조처를 취했을 가능성이 높다. 정부와 대통령의 한심하고 치졸한 행동이 신자유주의라는 거창한 이념적 프로젝트에 의해 기획되었다고 보는 관점은, 세월호 참사의 원인과 대처 과정에 대한 평가를 지나치게 단순화한다.
1997년 외환위기를 전후로 한국에 분명히 시장만능주의적 전환이 이뤄졌고, 이로 인해 사회적인 불안정성이 증대됐다는 점은 분명하다. 그러나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신자유주의로 단순화하는 논변은, 세월호 참사를 두고 정부와 해경의 무능을 질타하며 정부의 축소와 시장의 확대를 대안으로 제시하는 주장과 방향만 다를 뿐 근거가 엉성하다는 점에서 논리의 수준은 같다.
백승연 서울시 강동구 둔촌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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