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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세제개혁, 어떻게 할 것인가 / 구석모 |
세제개혁의 방향을 올바르게 잡기 위해서는 우리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관한 이해가 선행되어야 한다.
한국 경제는 두 가지 구조적 변화를 보이고 있다. 먼저 가장 중요한 변화는 경제를 주도하는 성장동력은 대규모 물적 자본설비가 아니라 고급두뇌와 인력을 포함한 인력자원이라는 사실이다. 현 정부가 강조하는 창조경제는 자본의 대량 투입이 아니라 인력자원에서 비롯한 창의적 지식과 기술혁신에 의해 이뤄진다. 앞으로 경제성장은 물적 자본의 축적이 아니고 인적 자본의 축적에 의해 주도될 것이다.
다음으로 우리 경제는 기업의 자본축적 과잉과 개인 및 가계의 소비구매력 부족 상태에 있다는 사실이다. 가계 및 개인의 소득과 구매력을 늘리는 데 정책의 중점을 둬야 한다. 민간소비는 노동력 즉 인력자원을 재생산하기 위한 일종의 투자행위이다. 양질의 노동력과 고급두뇌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풍요롭고 건전한 소비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민간소비는 단기적으로 경기활성화 요인으로서뿐만 아니라, 장기적으로 성장원동력인 인적 자원의 창출 요인으로서 그 중요성이 인식되어야 한다. 이런 경제의 구조적 변화에 맞춰 세제개혁의 방향과 몇 가지 과제를 제시한다.
먼저 민간소비를 억제하는 모든 소비 관련 세금을 철폐하거나 세율을 인하해야 한다. 부가가치세율을 인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리고 일부 ‘사치성 소비’에 부과되는 특별소비세는 즉시 철폐되어야 한다. 대표적 예로서 골프가 불건전한 사치성 소비인가를 묻는다. 사회적으로 해악이 되는 일부 소비품목을 제외하고는 그 밖의 모든 소비에 대한 특별소비세는 철폐되어야 한다. 소비 관련 세금의 경감은 단기적으로 소비 증대를 통한 경기활성화를 실현하고, 장기적으로 조세체제의 중심을 역진적 간접세에서 선진적인 직접세 쪽으로 개편함으로써 소득분배 개선에도 도움이 된다.
주택 소유에 대한 무거운 재산세 부담을 경감시키는 문제도 고려해야 한다. 주택은 투자 내지 투기 자산이 아니다. 의식주의 일부인 주택은 일종의 ‘내구소비재’이다. 출산장려와 우수한 인력자원의 생산에 필수적인 주거환경을 조성하는 인구정책 차원에서 주택재산세를 경감하는 문제도 생각해야 할 과제이다. 주택을 자본 소유가 아닌 내구소비재로 보는 인식전환이 요구되는 때이다. 현재 주택에 대해 재산세와 겹쳐서 이중으로 종합부동산세를 부과하고 있는데, 주택 소유를 죄악시하는 종합부동산세는 폐지되어야 한다.
다음으로 자본소득에 대한 과세 문제이다. 현재 주식투자에서 발생하는 투자이익에 대해서는 세금을 부과하지 않는다. 50여년 전 경제개발 초기에 자본시장 육성과 내자동원이란 정책 슬로건을 내세우고 추진된 금융저축 우대와 주식투자 자본소득에 대한 비과세 정책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주식투자 이익 비과세는 명분이나 실익으로 보나 더 이상 존속될 수 없다. 이러한 고소득자 세금감면은 부의 양극화를 조장할 뿐만 아니라 막대한 규모의 조세 원천을 상실하는 결과를 부른다.
현재 미국은 40% 이상의 자본이득세(Capital Gain Tax)를 부과하고 있다. 우리도 이와 비슷한 수준의 자본이득세 도입을 검토해야 한다. 이 세제의 도입을 반대하는 쪽은 금융자본이 이탈함으로써 주식시장이 위축될 것이라는 논리를 내세우는데, 지금 한국 경제에 필요하고 도움이 되는 것은 금융자본이 아니라 산업자본이다. 금융자본의 단기적 유출입은 금융시장과 외환시장을 교란시킬 뿐 아무런 이익을 가져오지 못한다. 이 새로운 조세의 도입에는 고소득층 및 금융자본 집단의 강력한 조세저항이 예상된다. 이에 맞설 수 있는 정치적 결단과 지도력이 요구된다.
끝으로 법인세 문제이다. 법인세는 기업소득에 대한 과세이다. 따라서 법인세 인상은 기업 투자의욕을 감퇴시키고 기업경쟁력을 저하시킨다는 논리에 밀려 함부로 다루지 못하고 성역화되고 있다. 기업 활동의 결과물인 기업이윤에 부과하는 세금은 기업의 투자의욕과 경쟁력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 법인세 최고세율을 3~5%포인트 정도 올린다고 기업 경영에 부정적 영향은 없을 것이다. 지금 대기업은 엄청난 규모의 사내유보 이익금을 쌓아놓고 있다. 수요가 없어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이지, 세금 부담 때문에 투자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개인 근로소득 세율과 비교해도 기업소득 세율은 지나치게 낮다. 임금에 부과되는 근로소득세와 기업이윤에 부과되는 법인세 사이에 조세부담의 차이가 지나치게 크다는 것은 세제상 근로자보다 기업인을, 노동보다는 자본을 우대하는 격이다. 이러한 불균형을 바로잡는 것도 중요 과제이다.
결론적으로, 이번 조세개혁은 지금까지 개인과 가계, 그리고 저소득층에 과중하게 기울어진 세금부담의 불균형을 바로잡아 이제는 고소득층과 대기업이 조세부담의 고통을 분담하는 정치·경제·사회적 개혁의 작업이라는 인식과 자세로 추진되어야 할 것이다.
구석모 전 한국경제연구원 부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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