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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03.16 18:47 수정 : 2015.03.16 21:00

일본은 지금 혐한 감정이 확산되면서 한국에 대한 비방이 인터넷에 넘치고 있다. 그 바탕에 ‘고운 말’로 이웃나라에 대한 편견과 적개심을 선동하는 책들이 있다. ‘한국인을 죽여라’와 같은 헤이트 스피치(특정 인종·집단 등에 대한 혐오발언)를 하지 않아서 눈에 띄지는 않는다. 하지만 재특회와 같은 일본의 배외주의 단체를 만든 것은 그런 종류의 언설들이다.

지난달 사와다 가쓰미 일본 <마이니치신문> 서울지국장이 <한국 ‘반일’의 진상>(문예춘추)이라는 책을 발표했다. 요약하자면 이 책은 ‘반일이 폭주하는 한국’과 ‘순결한 일본’이라는 대립을 만들고, 적절하지 않은 논리로 한국과 일본의 차이를 일부러 강조하고, 한국의 새로운 일본 이해를 부정하면서 양국 간의 우호를 방해하는 내용이다. 저자는 일본 언론인 중에서도 지한파로 꼽히는 사람이지만 일본어로 일본인들에게 이웃나라에 대한 적개심을 선동하는 책을 쓴 것이다.

저자는 들머리에서 “일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분위기가 한국 사회를 지배하고 있다고 말한다. 그렇다면 왜 한국에서 일본의 우경화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가. “일본 따위는 아무것도 아니다”라는 여유를 한국이 가진다는 소리는 아직 겉치레로라도 말할 수가 없다.

‘한-일 관계에 큰 영향을 미치는 한국 사회의 의식변화를 소개’하는 책이라고 하지만, 저자가 말하는 ‘반일’이 도대체 무엇인지 명확하지 않다. 본문에 따르면 ‘위안부 문제나 독도 문제에서 일본을 비난’하는 것이 ‘반일’이라고 말하고 싶은 것 같다. 너무 천박하고 적개심을 선동하는 말이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다.

저자는 1장 ‘자각 없는 반일’에서 한국인에 대해 ‘일본 팬’과 ‘반일’이 같은 사람 속에 동시에 존재한다, ‘반일’에 대해서는 딱히 의식하지 않는다, 라고 쓰고 있다. 하지만 개인의 소비행동과 국가외교를 비교 대상으로 삼는 것은 분석단위(unit of analysis)의 과오다. 한국 음식을 선호하면서 독도 주권을 주장하는 일본인은 ‘자각 없는 반한’이라고 봐야 하나.

위안부 문제를 두고 저자는 2장 ‘‘올바름’이란 무엇인가?’에서 “한국이 최근 위안부 문제의 국제화를 시도할 때 ‘현대적인 개념으로 통하는 여성의 인권문제’라는 논리를 자주 쓰는 것은 국제사회의 흐름에 따라가자는 판단”이라고 말한다. 그러나 피해자들의 국적, 인종이 단일하지 않은 위안부 문제는 원래 국제적인 문제이며, 전시 성폭력으로 보는 시각은 한·일 두 나라가 최근 배우게 된 것이다. 국제사회의 논리를 한국이 일방적으로 이용했다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한 발언이다.

저자는 위안부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의 태도가 오히려 한국에 대한 혐오감을 증폭한다고 자각하는 사람이 한국 정부 안에 거의 없는 것 같다고 쓰고 있다. 여기서는 사죄와 망언을 반복해온 일본의 불성실한 태도가 외면되고 있으며, ‘한국에 대한 혐오감’이 별다른 의문 없이 전제되고 있다.

저자는 한국과 한국인을 다룬 4장 ‘대국에 끼인 비애’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것에 대한 불안감이 원래 있다’고 주장하며, 성형수술과 대형 차 선호, 한류 열풍에 대한 자부심, 한국 홍보 전문가의 존재 등을 언급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서도 개인(의 승인 욕구)과 국가를 동등 비교하고 있으며, 분석단위가 다르기 때문에 논의 자체가 성립하지 않는다.

그리고 세월호 참사 당시 재미동포들이 진행한 ‘박근혜 정권에 사고의 책임이 있다고 규탄하는 활동’을 대국인 미국 여론에 대한 ‘고자질’이라고 말하는 저자의 모습은 마치 인터넷 공간의 누리꾼과 다름이 없다. 조국에서 일어난 참사를 간과하지 못해 사람들이 동포애를 발휘한 일이라고 보는 것이 정상이다.

저자는 책의 마지막에서 ‘한국에 대해 환상을 품어서는 안 된다’고 말한다. ‘환상’이란 ‘가만히 있어도 일본을 이해해주는 한국’, 즉 일본 교육을 받은 세대가 많이 사는 한국이라는 뜻인데, 식민지를 벗어난 한국의 새로운 일본 이해를 저자가 격하게 부정하는 근거는 본문에서 보이지 않는다. 지금 일본을 방문하는 한국인들, 그리고 대학교의 일본 관련 학과들은 여전히 많으며, 일본학 관련 학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는 여기 한국에 ‘본래의 일본을 이해하는 사람’이 없다고 하는 것은 시야가 좁거나, 말하기보다 대립을 선동하는 언설이라고 표현하는 게 더 적절하다.

생각의 기준을 일본인도 한국인도 아닌 ‘인간’에 놓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사쿠라이 노부히데 남서울대 글로벌상경대 조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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