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종교가 채워주지 못하는 인간의 욕구와 해소되지 않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아마 현대인으로 하여금 과학에 희망을 걸고 매달리게 하는 것인지 모르겠다. 요즘 연구 결과를 평가하는 데 보통 세계 최초의 성공사례라든지, 상당히 힘든 연구였다든지 하는 것이 먼저 거론된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연구가 갖는 목적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이다. 그런데 얼마 전 떠들썩했던 황우석 교수팀의 개 복제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있었는가? 개 복제의 성공은 인간의 난치병 치료와 신약 개발 및 세포 치료제 개발·응용에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고 하나, 구체적으로 어떤 도움인지 분명하지 않다. 또 멸종 위기의 동물 복원을 이야기하지만, 멸종 동물의 복원보다는 멸종 위기를 맞게 된 근본원인에 대해 생각해 보아야 한다. 이를테면 어떤 동물이 멸종될 위기에 있는데, 그것이 생태계의 변화나 파괴에서 비롯되었고, 그 원인이 인간이라면 생태계 파괴를 그만두어야 할 것이다. 단지 동물만 복원해 놓는다고, 복원된 동물이 부적합한 환경에서 생존할 수 있겠는가? 멸종의 원인이 다른 이유, 즉 진화 과정이나 적자생존의 자연법칙에 낙오한 때문이라면, 자연을 거슬러 굳이 멸종 동물을 복원할 필요가 있는지, 또 인간에게 그런 의무나 책임이 있는지 의문이다. 이식용 장기 공급원으로 사용하려는 목적으로 연구하고 있는 무균 미니돼지 복제도 지극히 위험한 이종감염과 면역거부 반응 등 상당한 문제를 안고 있다. 조류독감에서처럼 감염환자와 접촉한 모든 사람을 격리해야 하는 사태까지 염두에 두어야 하므로 서구에서는 사실상 연구를 포기한 실정이다. 더구나 동물 복제기술 중 가장 힘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는 개 복제는 인간복제 기술에 응용될 수 있으며, 인간복제에 대한 유혹과 관심을 증폭시킬 것이다. 인간배아 복제의 경우는 어떠한가? 제대로 모태에 착상되어 생명의 기회가 주어진다면, 인간으로 성숙될 수 있는 배아는 자신을 대변하거나 방어할 길이 없는 무방비 상태에 있다. 그러한 배아를 희생시키고 사회적 취약계층에 속하는 여성들을 난자 제공 수단으로 삼아 감행하는 연구가 과연 도덕적 정당성이 있겠는가? 만일 순수한 자율적 난자기증을 하는 여성이 있다면, 그 여성은 도덕적 정당성을 인정받기 힘든 연구에 자신이 도움을 주고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것은 개인에 국한되는 문제가 아니라 사회적 문제이며, 나아가 인류사에 관한 문제이므로 신중을 기해야 한다. 훗날 인간복제가 실재로 성행하게 되고, 그 결과 인간 존엄성이 극심하게 훼손되고, 생명경시 현상이 팽배하게 된 후, 배아 연구자나 난자 기증자가 자신은 단지 난치병 치료기술 개발을 위해 일한 것뿐이며, 그런 기술을 응용해 실제로 인간복제를 하는 사람들이 잘못이라고 한다면 얼마나 무책임한 일인가. 남용할 위험이 예상되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할 것이다.과학자는 자신이 참여하는 연구에 위험이 존재하면, 사실을 정확히 알려서 일반인들로 하여금 충분한 사회적 검토와 논의를 거쳐 위험에 대비하고 그러한 기술 개발의 가치가 있는지에 대해 판단하고 함께 결정할 수 있도록 기회를 주어야 한다. 과학과 사회는 서로 영향을 끼친다. 과학은 사회를 변화시키며, 사회는 그 사회가 필요로 하는 것을 과학에서 요구하고 지원한다. 한 사회가 지원하는 과학이 모험적이고 위험한 기술이라면, 그 사회는 불안정한 상태라는 적신호일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의 몇몇 과학자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생명조작의 문제는 결코 기대만큼 밝은 미래를 약속하는 것만은 아니므로, 진지한 성찰이 필요하다. 구인회/가톨릭의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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