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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3 18:13 수정 : 2005.10.03 18:13

왜냐면 재반론 - 조갑주씨의 “방폐장 선정 절차는 민주적이다”를 읽고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데 껍데기만 주민투표 형식을 취했다고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핵폐기장은 이미 법이나 절차 또는 안전성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이전에도 핵폐기장 문제는 정부가 말하는 ‘적법한 절차’로 진행되어 왔다. 그러나 ‘적법한 절차’ 바로 그것 때문에 실패를 거듭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20년 가까이 어디에도 들어가지 못했고 가는 곳마다 공동체를 파괴하고 지역갈등을 남겼다.

핵폐기장은 이미 법이나 절차 또는 안전성의 문제가 아니다. 신뢰의 문제가 된 지 오래다. 국민들은 ‘신뢰’를 말하는데 정부는 ‘적법한 절차’를 말한다. 그간의 사업방식에서 이미 산업자원부와 한국수력원자력, 핵산업계의 신뢰는 땅에 떨어졌고, 그것이 핵폐기장 사업의 가장 큰 걸림돌이다.

국민의 신뢰로 가능한 일을 또다시 그럴듯한 절차를 밟겠다는 것이고, 그것이 이번에는 주민투표 제도다. 조갑주씨의 말처럼 투표가 민주적인 절차라는 것에 동의한다. 하지만 엄밀한 의미에서 주민투표가 진정 민주적이기 위해서는 형식이 아닌 내용을 담보해야만 한다. 형식은 민주적인 내용과 절차를 담보하기 위한 최종적 절차여야 하는데, 지금 진행되는 주민투표는 반민주적인 내용과 반민주적인 절차를 담아내는 최종적 절차이며, 이것으로 이번 주민투표가 갖는 반민주성의 면죄부를 받고자 하는 것처럼 보인다.

핵폐기장은 사고가 나면 엄청난 희생이 따르는 생존권의 문제다. 지금처럼 20년 동안 불신을 받아 왔던 정부가 일방적으로 정한 주민투표와 같은 절차나 방식으로 강요해서는 안 되는 사업인 것이다. 그것도 지금처럼 어설픈 주민투표를 통해 결정하려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찬·반 양쪽이 공정하게 홍보를 한다고 하는데, 국가적 지원과 엄청난 홍보비를 쓰는 한국수력원자력과 반대쪽의 홍보는 애초부터 불공정한 게임이다. 또한 정부는 핵관련 정보를 철저히 독점해 왔다. 주민투표에 앞서 핵관련 정보 공개가 우선되어야 한다. 투명한 정보가 없는 상태에서 벌이는 주민투표는 의미가 없으며, 공정한 홍보도 불가능하다. 게다가 찬·반 양쪽의 홍보과정에서 빚어지는 각종 불법적인 사태를 대하는 공권력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중적 잣대와 태도는 그야말로 군부독재 시절을 초월하며, 당해보지 않은 사람들은 믿기 어려운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공정하지도 투명하지도 않은데 껍데기만 주민투표 형식을 취했다고 민주적이라고 주장하는 것은 억지다. 결국 핵폐기장 문제는 사회적 합의를 위해 먼저 노력해야 한다. 투명하게 핵 정보를 공개하고 핵 발전이 계속 필요한지부터 핵폐기장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대안이 있으며,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열어놓고 논의해야 한다. 핵폐기장 문제는 핵에너지 정책을 확대하려는 정부 및 핵산업계와 국가에너지 정책에 대한 전환을 요구하는 국민과의 갈등이 핵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조갑주씨의 주장과는 달리 반핵 관련 시민사회 단체들은 그동안 줄곧 사회적 합의기구를 요구해 왔고, 대화를 통해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노력해 왔으나 진정 사회적 합의에 나서지 않고 있는 것은 정부다. 스스로는 합의에 나섰다고 주장하지만 사회적 합의에 나섰는데 20년 가까이 실패를 하지는 않았을 터이다. 정부가 사회적 합의에 나서지 않는 것은 사회적 합의에 나선다면 제기될 수밖에 없는 대안에너지나 대안시스템에 대한 국민적 요구를 거부할 명분이 없는 정부가 막상 스스로 핵산업계의 영향력에서도 자유롭지 못한 까닭으로 보인다.

식량과 에너지의 자립은 나라의 자주성을 담보하는 중요한 요소이다. 태양, 수소, 바람, 조력, 파력, 지열 등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국가의 에너지 독립뿐 아니라 환경도 지켜준다. 물론 아직은 발전량이 적고 장기적 준비가 필요하지만 이미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있다. 향후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력이 국가경쟁력의 중대한 위치를 차지할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민주적인 내용이나 합의는 고사하고 절차적 하자까지 있는 부안조차 정부는 후보지로 받아 들였고 이때부터 부안은 전쟁터가 되었다. 절차적 하자까지 있는 부안에서도 그토록 많은 피와 구속자를 내고서야 막을 수 있었다. 이제 형식적 민주성만이라도 갖춘 주민투표로 결정된다면 그 지역은 부안의 몇 배의 고통을 감수하며 싸워야 할 것이다.

지금은 형식적인 주민투표의 중단과 국가 에너지 정책의 전면 재검토를 요구하는 사회적 선언이 필요한 때다. 일단 주민투표가 끝나고 난 뒤 주민투표 자체가 잘못된 절차였음을 말하는 것은 설득력을 갖기 어렵다. 지금 핵폐기장 문제를 형식적 주민투표로 결정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밝히고 몇 해가 걸리더라도 결국 사회적 합의가 가장 지름길임을 선언해야 한다. 부안 몇 배의 고통이 시작되기 전에 ….

김병철/전 부안반핵대책위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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