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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07 18:15 수정 : 2005.10.07 18:15

왜냐면

일본 대학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재 대학교수들은 공무원 신분 상실로 인한 사기 저하가 심각하고 또 실제로 연구비나 법인 운영비 등의 삭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국립대학 법인화를 놓고 관련 당사자들 사이의 갈등이 증폭되는 가운데 최근 일본의 국립대학 법인화 1년을 긍정적으로 보는 기사들을 자주 접하게 된다. 그 내용은 국립대학 89곳이 법인화 이후 1100억엔(9900억원 상당)의 흑자를 냈고, 이는 대학들이 산학협력을 강화하고 경영 효율성을 높인 결과라는 것이다. 이러한 평가는 현재 교육부가 추진하는 대학 법인화의 정당성을 제공하는 중요한 근거로 제시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평가는 사실과도 다를 뿐만 아니라, 법인화 실시 배경 등 일본과 우리의 차이를 고려하지 않은 무지의 소치다.

일본 국립대학 법인화의 주목적이 공무원 수를 줄여 국가 재정 위기를 극복하려는 것이었다는 점은 우리와 차이가 있지만, 대학 자율을 보장하고 이를 통해 대학의 국제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한 것이라는 데는 이론의 여지가 없다. 또 법인화 반대 주장에 편승하여 국립대학의 비효율을 존속시키려는 태도 또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일본의 국립대 법인화는 크게 교육 및 연구 부문과 대학 재정 부문으로 나누어 평가해 볼 수 있다. 먼저 교육과 연구 환경은 법인화를 통해 개선되었는가. 객관적인 평가는 어렵지만 일본 국공립대 전자기술 관련 분야를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법인화 이후 교육과 연구 환경이 오히려 악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즉 설문조사 응답자의 67%가 법인화 이후 교육 환경이 더 나빠졌다고 대답했고, 연구시간이 오히려 감소했다는 대답도 55%로 절반을 넘었다.

다음으로 대학 재정은 어떤가. 국내에 보도된 법인화를 통한 흑자 1100억엔 중 1057억엔은 옛 국립대학에서 징수해 오던 등록금 미징수분과 부속병원 등의 재고 약품비 등이다. 따라서 경비 절감이나 외부 연구비 수주 등 독립 법인으로서 경영 노력에 의한 순이익은 54억엔에 불과하다. 그리고 이 순이익도 도쿄·오사카 등 옛 제국대학들과 부속병원을 가진 대학에 한정되어 있다.

그외 지방 대학 대부분의 이익금은 자산 평가에 의한 장부상의 이익과 졸업생을 대상으로 한 쌀 판매나 드라마 촬영장 대여 등 눈물겨운 경영 노력의 결과다. 부속병원들도 2차연도 경영 평가에는 대학의 경영수익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마지막으로 필자가 개인적으로 면담한 일본 대학교수들의 말을 들어보면 현재 대학교수들은 공무원 신분 상실로 인한 사기 저하가 심각하고 실제로 연구비나 법인 운영비 등의 삭감을 경험하고 있다고 한다. 또 교수 사회에서 금기시되어 왔던 ‘돈 버는 연구’에 대한 얘기가 공공연하게 일반화되었다.


국립대학을 영리와 비용 절감의 측면에서만 사고하는 것이야말로 대학 경쟁력을 떨어뜨리고 교육을 공공성에서 멀어지게 하는 것이다. 또 실험기기나 예산 등 교육 인프라 측면에서 대학간 차이가 거의 없는 일본과 달리 우리나라는 서울대와 거점 국립대학과 지방대학, 그리고 특수목적대학 등 대학군간 차이가 극심한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법인화는 대학 서열화를 극대화하고 대학간 부익부 빈익빈을 심화시켜 결국 거의 모든 지방대학을 파탄에 이르게 할 것이다. 우리보다 앞서 법인화를 시행한 일본의 경험을 조금만 이해한다면, 이 법안은 시기상조이며 따라서 상정되지 않는 게 마땅하다.

이형래/진주산업대학교 교수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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