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재반론 - 신창현 소장과 김병철 전 집행위원의 글을 읽고
국회의 승인을 거친 법적 절차에 대해 시민단체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상기 법률행위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룬 법체계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지난 9월20일치와 10월4일치 <한겨레> ‘왜냐면’에서 신창현 환경분쟁연구소장과 김병철 전 부안반핵대책위 집행위원은 “방폐장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는 절차적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형식적 민주주의로서 향후 주민 간의 갈등이 증폭될 것”이라고 비판하고 있다. 그런데 환경단체가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방폐장은 방사선으로부터 국민을 보호하고 자연환경에 미치는 피해를 극소화하기 위한 시설이다. 특히 이 시설은 혜택을 누린 우리 세대가 건설하지 않으면 필연적으로 우리 후손이 부담하여야 할 시설이며 시간이 지연될수록 사회적 비용은 증가하는 특성을 지니고 있다. 그동안 많은 희생 위에 겨우 마련된 방폐장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에 대해 환경 관련 분야의 전문가들이 주민투표 자체를 반대하는 이유가 무엇인지 진정 납득하기 어렵다. 신창현 소장은 17%의 주민 찬성률은 주민의 의사를 대변한다고 볼 수 없다고 하고, 김병철 위원은 시민·사회단체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고 주민투표를 하는 것은 형식적인 민주주의로서 절차상의 정당성을 인정할 수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방폐장 선정을 위한 주민투표는 정부의 입법절차에 따라 국민의 대표기관인 국회의 승인을 거쳐 추진된 법적 행위다. 국회의 승인을 거친 법적 절차에 대해 시민단체와의 합의를 거치지 않았기 때문에 상기 법률행위를 신뢰할 수 없다고 주장한다면 우리 사회의 근간을 이룬 법체계는 무너지게 될 것이다. 민주사회는 최소한의 법적 체계 아래서 혼란과 갈등, 무질서 등을 극복하게 되는 것이며, 국회는 최고의 사회적 합의기구로 인정받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들은 방폐장 사업은 중립적인 제3자가 대화와 타협의 방법으로 해결하는 갈등중재법(가칭)의 절차를 준용할 것을 제안하였다. 그리고 갈등의 당사자로 정부·지방자치단체·한국수력원자력과 주민·환경단체로 양분하고 중재자로는 시민단체(환경단체 포함)를 추천하였다. 그러나 엄밀한 의미에서 갈등의 주체는 혐오시설을 유치하는 지역주민들이다. 여기서 정부·지자체·한수원은 국민의 복리 증진을 위해 언젠가는 방폐장을 건설하여야 하는 의무를 국민으로부터 위임받은 대리인에 불과하며, 환경단체는 핵에너지 중심 정책의 포기와 재생가능 에너지 정책의 확대를 요구하면서 정부의 협상 상대자로 자신들의 위상을 제고하려고 노력하는 이해관계인에 불과하다. 이처럼 이해관계의 한 당사자인 환경단체가 중립적인 제3자로서 중재자 위상에 적합한지 의문이다. 더욱 환경단체는 자신들과의 협의가 없는 방폐장 사업 추진은 사회적 합의에 도달하지 않는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방폐장 선정 주민투표의 백지화를 요구하고 반대투쟁을 위한 주민들을 공공연히 선동함으로써 이해관계인으로서의 역할을 자임하고 나서고 있다.한편 방폐장 사업은 환경단체의 이러한 이중적 활동(대표적인 환경단체의 이중적 활동은 주민을 상대로 한 방폐장 반대 이유로 핵 위험성을 언급하면서도 정부에 대한 요구사항은 사회적 합의 부족 등을 지적하고 있다는 점) 과정 속에서 어느덧 시설의 당위성 및 공익목적성 등을 상실하여 버리고 죄 없는 주민들 간의 심각한 대립만을 상처로 남기게 되었다. 주민투표는 민주사회에서 주민 각자의 의견을 수렴하기 위한 가장 전통적인 방법으로 인식되어 왔다. 의견수렴은 전 주민이 참석하여 각자의 의견을 제시하는 것이 가장 이상적이지만 현실적으로 전원 참석의 의견수렴은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통상적으로 통계적인 샘플링(표본추출) 기법을 활용하게 된다. 통계적 샘플링 기법은 제한된 표본에서의 의사결정 결과를 기준으로 전체 모집단의 의사를 판별하는 기법이다. 신창현 소장 등은 17%의 찬성률(3분의 1 참석에 2분의 1 찬성 비율은 전체 주민의 17%에 해당함)은 전체 주민의 의사를 대변할 수 없다고 주민투표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있다. 그러나 이는 통계적 개념을 잘못 이해한 결과라고 지적하고 싶다. 국회의 합의를 통해 설정된 판별기준은 이미 모든 사람에게 공시되어 있다. 주민 각자는 제시된 공시 기준에 따라 자신의 의사결정 기준을 마련하게 되고 이에 따라 찬·반의 의사 표시를 위한 투표에 참석하게 된다. 여기서 최소한 주민의 3분의 1이 참석하여 2분의 1의 찬성을 얻게 된다면 나머지 주민 3분의 2가 전원 참석하더라도 절반의 찬성은 얻을 수 있게 된다는 통계적 추론의 이론이 상기 판별 기준을 설정하게 된 근거다. 다만 3분의 1, 또는 3분의 2의 참석률 기준 설정은 투표의 성격, 이해관계인의 대소 여부, 사안의 중요성, 관심도 및 사회적 환경이나 기타 주변 상황 등에 의해 결정되는 것으로써 모집단 판별을 위한 최소한의 임의적인 기준일 뿐 이론적인 표준치는 아니다. 한편 방폐장 유치 지역에 이웃한 지역의 의견수렴을 요구하는 주장은 매우 당혹스러운 부분이다. 방폐장 주변 지역 지원에 관한 법률(특별법) 제정 당시 이러한 내용은 충분히 검토되었고 이웃한 지역은 혐오시설의 직접적 피해 대상 지역이 아니라는 검토 아래 국회에서 특별법을 제정할 때 이들의 의견수렴 절차는 제외된 것이다. 신창현 소장 등은 핵에너지 정책 확산 우려 및 신재생에너지 확대를 위해 방폐장 건설을 반대한다는 명분을 제시하였다. 신재생에너지 확대 등은 방폐장 건설과 별개의 사항으로서 국가 에너지 전략과 연계하여 검토할 사항이다. 신 소장 등은 환경보호를 목적으로 하는 점에서는 일치하지만 위와 같이 전혀 다른 목적의 사업 성취를 위해 중요한 또 하나의 환경보호시설인 방폐장 건설을 반대한다면 과연 이러한 활동이 국민들에게 공감을 얻을 수 있는지 진지하게 반성해 보아야 할 것이다. 김재혁/한국수력원자력㈜ 원자력환경기술원 기술정책팀 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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