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재반론-김재혁 부장의 “주민투표는 국회를 거친 합법적 절차다”를 읽고
지하자원이 없어 에너지를 수입한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미래에너지 기술까지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국민이 20년 동안 정부의 적법한 절차를 거부하고 있을 때 정부가 해야 할 일이 적법한 절차를 또다시 강조하는 것이어야 하는가, 아니면 사회적 합의기구를 만들고 대화에 나서는 것이어야 하는가? 핵폐기장은 혐오시설이라는 표현보다 위험시설이라는 표현이 더 적절하다. 이처럼 엄청난 위험시설을 설치하면서 위험성을 우려하는 국민을 향해 정부가 먼저 생각해야 할 것은 적법한 절차나 법보다 상위 개념인 헌법에 보장된 생존권, 다시 말해 생존을 위한 국민의 기본적인 인권이어야 한다. 핵폐기장 문제에서 갈등의 핵심은, 에너지 정책은 정부가 핵발전 중심의 정책을 계속하며 핵폐기물을 만들어 내더라도 관여하지 말고 핵폐기장 지을 자리나 주민투표로 결정하라는 정부와, 이제는 정부의 에너지 정책을 살피고 관여하겠다는 국민들과의 갈등이다. 처음에는 우리 지역에 들어오고자 하는 핵폐기장을 막기에 급급했던 주민들이 핵발전 중심의 국가 에너지 정책에 문제가 있음을 인식하기 시작했다. 다시 말하지만 핵폐기장은 적법하다 하더라도 주민투표처럼 국가가 일방적으로 정한 절차로는 풀 수 없는 문제가 된 지 이미 오래다. 핵폐기장은 법이나 적법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신뢰의 문제가 된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어떤 곳에도 핵폐기장 건설은 안 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핵발전소에 자체 보관하든 새로 짓든, 논의해서 필요하다면 만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핵발전이 계속 필요한지부터 핵폐기물은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지 하는 문제에 이르기까지, 어떤 대안이 있으며 어떤 절차가 필요한지 함께 논의해서 결정하자는 것이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전면 재검토가 필요한 시점임을 말하는 국민의 요구를 정부가 외면함으로써 지역갈등과 고통을 키우고 있다. 석유와 핵에너지 시대는 이미 저물기 시작했다. 세계가 환경 문제에 주목하고 있고 에너지 역시 예외가 아니다. 이제 환경을 오염시키는 에너지, 위험한 에너지는 미래의 에너지로 대접받지 못하는 시대가 오고 있다. 지금 세계는 국가별 온실가스 규제에 나서고 있다. 훗날 핵발전을 규제하는 날이 현실화되어 핵에너지를 규제하는 날이 오게 될 것이다. 핵에너지로 생산한 상품은 수출이 어렵게 되고 국가별 핵에너지 총량제 등으로 규제를 받게 될 수도 있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에서도 온실가스를 줄일 수 있는 주요 수단에 원자력을 포함시킬 수 없다는 결정을 내린 바 있다. 재생가능 에너지로의 전환은 국가의 에너지 자립을 위한 투자이며 환경도 지켜줄 수 있는 대안이 된다. 물론 아직은 발전량이 적고 장기적 준비가 필요하지만, 이미 선진국들이 앞다투어 에너지 정책을 전환하고 있고 다국적 석유회사들도 2050년쯤이면 재생가능 에너지가 전체 에너지의 절반 이상을 차지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는가 하면 미래의 에너지 기술력 확보를 위해 막대한 투자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향후 재생가능 에너지 기술력이 국가경쟁력의 중차대한 위치를 차지할 것임을 짐작하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지하자원이 없어 에너지를 수입한 것도 가슴 아픈 일인데 미래를 제대로 준비하지 못해 미래에너지 기술까지 의존할 수는 없는 일이다. 미래에너지 전쟁은 이미 시작되었다. 자연과 기술이 함께 만들어내는 에너지는 더 이상 꿈이 아니다. 반도체 강국 한국은 이제 미래에너지 강국을 준비해야 한다. 국가 에너지 정책의 전환을 위한 국민적 요구가 필요한 때이다.김병철/전 부안반핵대책위 집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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