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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0.10 17:16 수정 : 2005.10.10 17:16

왜냐면

‘붕괴와 불신’의 본질이 교원평가제와 부적격 교사 퇴출에 있지 않다.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현행 입시제도와 획일적인 학교교육에 있다.

얼마 전까지 교원평가제 시행을 놓고 교육계가 내홍을 겪더니, 이제는 부적격 교사 퇴출 문제로 그 갈등과 대립의 골이 깊어가고 있다. 당최 풀릴 것 같지 않던 북핵 문제도 공동 선언문을 발표했는데, 교육계의 갈등은 협상과 대화마저 포기한 채 반목과 불신의 옹벽을 쌓으며 ‘나홀로 행진’으로 치닫고 있다. 행진의 대열에는 교육부와 교원단체는 물론 학부모단체까지 가세하여 방향도 모르고 목적지도 없는 삼두마차만 채찍질하는 형국이다.

먼저 교육부는 말한다. 공교육 붕괴와 불신에 교사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다. 교사들의 학습지도 무능력과 정년 보장이라는 철밥통의 나태함과 부도덕성이 ‘붕괴와 불신’을 낳았기 때문이라고. 그러자 학부모 단체도 교육부의 주장에 적극적인 힘을 보탰다. 사교육비 부담에 허리가 휘청거리는데 어찌 무능하고 부도덕한 교사들에게 내 자식들을 맡길 수 있겠느냐고. 교원평가제를 도입하고 부적격 교사를 걸러낸다면 교직사회에는 경쟁 체제와 자기정화 체제가 자연스럽게 마련될 것이고, 이는 교사들의 전문성 향상의 계기로 작용해서 ‘붕괴’와 ‘불신 해소’의 지름길이 될 것이라고. 과연 그럴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처방의 효과는 정확한 진단을 전제로 했을 때 나타나고, 진단이 잘못되었다면 그 처방책은 불신과 갈등을 불러일으키기 마련이다. ‘붕괴’와 ‘불신’에 대한 교육부의 진단은 ‘꿩 대신 닭’이라는 처방에 불과하다. ‘붕괴와 불신’은 사교육의 도움을 받지 않으면 명문대학에 진학하기 어려운 현행 입시제도와 획일적인 학교교육에서 비롯되기 때문이다. 어디 그뿐인가? 명문대 졸업장과 학벌 신화가 사회적 출세와 성공을 가늠하는 ‘보이지 않는 손’의 위력을 발휘하는 상황에서 교육의 불평등이 사회적 불평등을 재생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교육부는 교육정책의 잘못을 교사들의 책임으로 몰아가고 있다. 설령 교원평가제 도입과 부적격 교사 퇴출을 온전히 수용한다고 하더라도 ‘붕괴’와 ‘불신 해소’는 여전할 수밖에 없다. ‘붕괴와 불신’의 본질이 교원평가제와 부적격 교사 퇴출에 있지 않기 때문이다. 소위 시험지 유출과 성적 조작, 내신 성적 부풀리기, 성추행과 성희롱, 학생 체벌과 인권 침해, 촌지 및 금품수수, 뇌물 및 각종 비리 등 부적격 교사 문제는 교사집단의 신뢰회복에는 크게 기여할 수는 있어도 공교육 정상화의 필요조건은 아니다. 교원단체가 부적격 교사 퇴출에 비판적인 것은 퇴출 그 자체가 아니라 교원평가제 도입을 위한 정책적 징검다리 구실로 삼으려 한다는 데 있다. 부적격 교사 퇴출 문제는 교원평가제와 일란성 쌍생아가 아니다. 따라서 부적격 교사 퇴출 문제는 현행 법규를 개정 보완하면 학부모의 염려를 충분히 해소할 수 있다.

교육부는 교원단체의 주장처럼 법정 교원 수 확보와 교육여건 개선을 위한 신뢰할 만한 정책 의지를 보여주어야 한다. 학부모단체도 심리적 피해의식이나 이념적 잣대로 교원단체의 요구를 비난하기에 앞서 열악한 교육여건 개선을 먼저 요구하여야 한다. 교원단체의 반대 요구는 철밥통을 수호하려는 집단 이기주의의 발로가 아니다. 정작 시급한 공교육 정상화는 외면한 채 교육부문에까지 무한 경쟁의 시장원리로 통제하겠다는 신자유주의 교원정책에 대한 거부인 것이다. 외국자본에 교육시장을 개방하고 교원들까지 시장원리로 지배하게 되면 ‘교육의 세계화’라는 외피보다 더 큰 교육의 불평등 현상이 심화될 수도 있다. 이는 고스란히 대다수 민중과 그 자녀들에게는 희망의 메신저가 아닌 참담한 희생의 몫으로 다가올지도 모를 일이다.

박명섭/전남 곡성고등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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