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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면] 인도의 햇살 속에서 빛난 영혼의 도시들 / 이장민 |
지난해 5월, 인도의 햇살은 뜨거웠다. 몇 번의 짧은 출장으로 외국을 다녀온 적은 있지만 배낭여행을 떠난 것은 인도가 처음이었다. 뉴델리에서 바라나시를 거쳐 매클라우드간지와 마날리, 라다크의 옛 수도였던 레를 여행하는 한달간의 일정은 더위와의 싸움이었다. 아스팔트를 녹일 듯 강렬하게 지글거리는 인도는 마치 태양이 두 개인 나라 같았다. 새벽이 동트고 어스름이 가시자 인도 사람들은 갠지스강에 몸을 던지며 이른 아침부터 내뿜는 태양의 열기를 식혔다. 그렇게 도시 전체가 용광로와 같았던 바라나시를 떠나 달라이라마의 티베트 망명정부가 있는 아름다운 산골도시 매클라우드간지에서 선선한 바람을 맞으며 지친 몸을 달랜 뒤 인도 최고의 휴양도시인 마날리로 향했다. 관광도시 마날리는 스키와 물놀이가 공존하고 오래된 나무가 시원스럽게 뻗은 청량한 숲 뒤에는 나무 한 그루 없는 히말라야 산맥이 눈 덮인 채 준엄하게 서 있는 모순과 대비의 땅이었다.
태양의 기세가 북쪽으로 무섭게 치고 올라올 무렵 마날리에서 북쪽으로 450㎞ 떨어진 레로 피신하듯 이동했다. 새벽 2시에 마날리를 출발한 미니버스는 4천미터 높이의 깎아지른 듯한 히말라야 산맥을 18시간이나 횡단하며 저녁 8시가 돼서야 우리 일행을 레의 중심부에 내려놓았다. 다음날 아침 햇살을 받으며 깨어난 레는 평화스러웠다. 흡사 1960~70년대 우리나라 면 소재지와 비슷한 시내 모습과 흙으로 다진 전통가옥, 돌담을 비롯한 아기자기한 거리 풍광은 순수하고 정겨웠다. 시내의 야트막한 산에 위치한 곰파에서 바라본 레의 전경은 시장과 상가가 밀집한 활기 넘치는 상업지역과 편안함과 여유가 느껴지는 오래된 주택가가 자연스럽게 조화를 이루며 주변의 산세와도 절묘하게 공존하고 있었다. 인공적이고 자극적인 건축물을 최대한 배제하고 찬란했던 라다크의 옛 문화를 은근하게 드러내고 있는 레는 평화와 안식, 내면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는 영혼의 도시였다. 특히 현지인들의 소박한 미소와 가슴으로 전해오는 친절함, 개방적인 태도는 레가 왜 세계적인 영혼의 명소인지를 말해주는 듯했다. 우리는 레에서 며칠을 보낸 뒤 7시간 동안 차를 타고 투르툭이라는 오지마을로 향했다. 파키스탄의 훈자와 비교되는 투르툭은 거칠고 황량한 히말라야 산맥을 끼고 있는 작은 산골마을이었다. 전통을 간직하며 살아가는 해맑은 사람들과 한 가족처럼 부대끼며 웃음을 나누는 이웃공동체, 산 중턱에 위치한 너른 보리밭과 파란 빛깔로 흘러가는 거센 강물이 그야말로 영혼의 성소 같았다. 자연 속에서 사람들과 어울리는 것만으로 14년 가까이 직장생활을 하면서 쌓였던 마음의 독소가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나는 자연과 영혼이 한 폭의 수채화처럼 어울리는 레가 인도를 가장 잘 나타내는 도시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레는 나에게 그리고 전세계 수많은 사람들에게 평생 잊지 못할 영혼의 도시로 기억되고 있다.
우리나라는 지금 침체된 도시에 활력을 불어넣는 도시재생사업에 관심이 뜨겁다. 대전과 순천, 청주 등 많은 자치단체에서 도시재생지원센터를 설립해 도시재생에 열을 올리고 있다. 도시재생에서 중요한 것은 눈요기식의 자극적인 이벤트나 화려한 시설물을 유치해 사람을 끌어오기보다는 도시 자체에서 여유와 평화, 기쁨과 같은 내면의 충만함을 느낄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부분의 도시는 과도한 상업화와 획일화로 한 도시가 지역 내의 다른 도시를 빨아들이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지나친 상업화가 빚은 도시간의 충돌이자 물질의 욕망이 낳은 결과이다. 이제 넘쳐나는 상업화를 치유하고 물질의 욕망을 정화할 수 있는 영혼에 감응하는 도시를 만드는 것이 도시재생의 중요한 이슈가 아닐까 한다. 화려함과 요란함에 물든 도시를 정신의 풍요로움과 영혼의 충만함을 통해 균형을 맞추는 것이 도시재생의 출발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상업적으로 쇠퇴한 도시에 쇼핑몰 같은 상업시설을 다시 짓는 것이 아니라 도시에 숨통을 틔워주고 도시의 때를 벗길 수 있는 여백과 안식의 공간을 조성해야 한다. 그래야 시민들이 도시에서 받은 상처를 도시에서 풀며 공동체 속에서 어우러지며 살지 않겠는가? 이제 우리의 도시들이 응답할 때이다.
이장민 문화영성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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