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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르고 멍하게 서 있어야 할 때가 있다. 며칠 전 은행에서 나는 이런 경험을 했다. 시내라 은행 업무가 너무 바쁘니 조용한 외곽의 은행에서 공과금을 내라는 공손한(?) 말이었다. 외곽의 기준은 어디인지, 그럼 시내에 상주하는 사람은 멀리 택시를 타고 가야만 하는 건지 혼란스러웠다. 고객을 위한다고 그렇게 광고를 해대더니 정작 그렇게 사랑한다는 고객이 나 같은 사람은 아니었나 보다. 그날 난 몇 번이나 헤맨 후 그 조용하다는 외곽 은행을 겨우 찾아 공과금을 낼 수 있었다.
디마케팅이라는 용어가 있다. 나 같은 사람에겐 꽤 무서운 경제용어인데 한마디로 수익에 별 도움이 되지 않는 소비자는 배제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실제 수익에 도움을 주는 고객에게는 서비스를 쏟아부어 일명 브이아이피마케팅으로도 불린다. 은행에서 공과금 업무를 맡지 않거나 푹신한 소파를 딱딱한 의자로 교체한다든지, 동전 교환을 거부한다든지 하는 모든 일들이 바로 이 디마케팅의 예다.
그래! 20 대 80의 사회가 이미 도래한지 오래니 은행이야 별 수익 없는 80을 돌아볼 겨를이 없을 것이다. 하지만 돈 몇 만원 입금하는 것이 큰 행복이고 여름이면 은행의 에어컨 바람 쐬러 가는 것이 피서인 서민들에겐 화 나는 일이 아닐 수 없다. 땀 묻은 돈을 들고 찾아간 은행에서조차 약자 대접을 받게 되니 말이다. 이러다가 이제는 아예 일정금액 이하는 은행에서 입금도 못하게 되는 건 아닌지 두려워진다. 정말 누구를 위한 은행인지 묻고 싶어진다.
요즘 모두들 세상 살기 힘들다고 한다. 그 힘들다는 말의 의미 속에는 무엇이 들어 있을까? 물질적인 것에 대한 근심? 물론 그것도 있겠지만 예전보다 넉넉지 못한 우리네 인심도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것 같다. 돈이 없으면 차갑게 열외가 되고야 마는 그 끔찍한 경험. 언제 어디로 떨어질지 모르는 그 한없는 추락의 공포를 모두 안고 살아가니 우리네 인심이 팍팍해질 수밖에 없다.
은행에서의 이 씁쓸한 기억은 나만의 경험이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우리 사회의 곳곳에서 디마케팅의 예외 지역이 많이 남게 되길 참 바란다. 살다보면 때론 신용카드가 무용지물이 되고 몇백원의 동전이 더 소중할 때가 있다. 정말 가진 자만이 소중하다고 믿지 않기를 기원한다.
권동국/서울시 마포구 동교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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