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동통신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어디까지나 시장이 경쟁적으로 발전할 때까지의 과도적 조치이어야 하며 그 과정은 투명해야 한다. 이동통신은 기본적으로 시장경쟁 기능이 작동할 수 있는 산업이므로 시장구조를 경쟁적으로 발전시키고 규제를 최소화하는 정책을 지향해야 한다. 그러나 최근 정부와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는 이동통신 부가서비스 요금에 대한 논의를 지켜 보고 있으면, 이동통신 산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은 여전히 규제 산업 단계에 머물고 있음을 느낀다. 발신자번호표시(CID)와 단문메시지 서비스(SMS)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증대하면서 이들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증대하고, 소비자들이 요금 인하를 희망하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러한 소비자들의 희망이 정책에 반영되는 과정에서 시장경쟁의 논리는 거의 실종되고 정부의 직접 규제를 요구하는 목소리만 들릴 뿐이다. 부가서비스 요금에 대한 직접 규제의 법적 근거가 없다는 사실도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정통부의 의지만 있으면 법적 근거 없이도 어떤 일이든 가능하다는 인식이 만연해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새로운 시장 상황에 대응하여 관련 제도와 법률을 정비하거나 나아가 장기적으로 이동통신 시장의 구조를 경쟁적으로 개선하고자 하는 주장은 거의 찾아 볼 수 없다. 현재 이동통신 시장의 구조는 초창기에 비하여 오히려 더욱 집중되었으며, 그 주된 원인은 사업자들 사이의 합병을 허용한 데 있다. 특히 선발 사업자가 우수한 셀룰러 주파수를 모두 차지하게 되면서 시장 지배력이 더욱 강화되었고, 후발 사업자와의 격차가 더 벌어지게 되었다. 반면, 합병 인가 조건, 단말기 보조금 금지 등 새로운 규제들이 추가되어 규제는 더 강화되고 있다. 이러다 보니 사업자들에 대한 규제 당국의 영향력이 점점 증대하여, 심지어 법률적 근거가 없는 행정 지도나 압력에도 따를 수밖에 없는 상황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경쟁적 시장 구조와 규제 완화, 비경쟁적 시장 구조와 규제 강화의 두 가지 조합 중에서 우리는 후자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기업의 성패가 규제에 의해서 결정되게 되면 기업들은 품질과 가격 경쟁에 매진하기보다는 규제 당국과 정치권에 대한 로비에 전력하게 된다. 만일 규제 당국과 기업들 사이의 유착이라도 발생하게 되면 결국 그 피해는 고스란히 소비자들에게 돌아가게 된다. 사업자들 처지에서 당국의 규제가 반드시 싫지만은 않은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다. 또한 규제에 대한 불확실성은 해당 산업에 대한 투자를 위축시키는 부작용을 낳는다. 언제 어떤 규제가 등장하여 투자의 성패를 바꾸어 놓을지 모르는 상황에서 섣불리 투자를 결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시장의 구조를 하루 아침에 경쟁적으로 바꿀 수는 없기 때문에 당장은 직접적인 규제에 의존하는 것이 불가피하다. 이동통신처럼 국민 경제에 미치는 영향력이 큰 산업을 시장 지배력을 가진 사업자들에게 완전히 내맡길 수도 없는 일이다. 그러나 이동통신 시장에 대한 직접적인 규제는 어디까지나 시장이 경쟁적으로 발전할 때까지의 과도적 조치이어야 하며 그 과정은 투명하고 예측 가능해야 한다.최근의 논의는 이동통신 시장의 비경쟁적 구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장기적 청사진이나 일정표보다는 사업자들의 행위와 시장의 결과에 대한 직접 규제에만 집중되고 있고 절차상으로도 정통부를 통한 압력행사에 의존하고 있다. 직접 규제라는 단기 처방에 중독되어 문제의 근본에 대한 치료를 외면한다면 병은 점점 깊어지고 단기 처방의 강도는 점차 높아져야 할 것이다. 후발 사업자들의 발목을 잡는 주파수 문제, 새로운 사업자의 시장 진출 문제, 이동통신사 변경에 따른 전환비용을 추가적으로 낮추는 문제, 이동통신 콘텐츠 시장에서의 경쟁적인 환경 조성 문제 등의 구조적인 정책에 더 큰 비중이 주어져야 한다. 작년에 도입된 번호 이동성의 시행으로 소비자들의 선택 폭이 증대하고 이동통신사들 사이의 경쟁이 한 단계 심화된 것은 이러한 구조적 정책 효과의 좋은 보기다. 자장면값, 커피값까지 정부에서 지정하던 70년대로 돌아갈 수는 없다. 김영산/한양대학교 경제금융학부 교수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