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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5.11.09 19:01 수정 : 2015.11.10 15:42

○○○ 선배님께

이렇게 지면으로 선배님을 대하게 되어 착잡한 마음이 앞섭니다.

선배님과 연락이 끊기고 난 뒤 멀리서 한국학중앙연구원 교수가 되셨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참 잘되었다는 생각을 진심으로 했었습니다. 그리고 저는 개인적인 일로 한 2년간 한국을 떠나 있었지요. 그러다 최근 언론 지면을 통해서 낯익은 선배의 이름을 보게 되었습니다. 한국사교과서 국정화에 찬성하는 교수 명단에서 선배님의 이름을 접하며 당혹스러웠습니다. 동명이인이었으면 하는 마음이 들기도 했습니다.

27년 전 처음 대학에 입학했을 때 선배님은 학과 조교셨죠. 신입생인 저희 동기들에게 많은 도움을 주셨고, 답사 때는 저녁에 소주잔을 함께 기울이기도 했던 기억이 새롭습니다. 그 후 선배님은 독일로 유학을 가셨고, 전 졸업 후 교직에 몸담게 됐습니다. 제가 모교 대학원에 진학해서 한 학기 동안 선배님의 강의를 들었던 것도 인연이었네요.

선배님과 함께했던 과거를 떠올리면 왜 선배님이 한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입장을 가지게 되셨는지 짐작도 못 하겠습니다. 적어도 제 기억에 선배님의 역사철학은 그렇지 않았거든요. 선배님 강의를 들으며 서로 의견이 다른 부분에 대해 토론하며 수업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대학에서 선배님의 강의를 들었던 후배 역시 선배님께선 열린 사고를 갖고 계셨고 학생들에게 그렇게 강의를 하셨던 걸로 기억하더군요.

선배님께서 한국교육개발원에 근무하셨을 때로 기억합니다. 선배님께선 저에게 ‘우리 동문들도 이제 연구소나 국가기관 같은 데서 많은 역할을 해야 한다’며 저에게도 권유하셨습니다. 혹시 이런 이유 때문에 선배님의 입장이 바뀌셨나 하는 불경한 생각도 듭니다. 누구라도 사회현상이나 역사에 대해 자신의 입장을 갖는 건 자연스럽습니다. 선배님께서 교과서에 대해 어떤 입장을 갖고 계시든 그것도 자유겠지요. 그런데 학생이 공부하는 교과서가, 그것도 역사교과서가 하나의 입장만을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것은 심각한 문제 아니겠습니까? 저는 제가 지지하는 입장을 갖는 국정교과서 역시 반대합니다. 다양성은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적인 필요조건입니다.

얼마 전 중국에 있는 제 큰딸이 연락을 했습니다. 학교에서 토론대회가 있는데 아빠가 좀 도와줬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토론 주제는 ‘일제가 우리나라의 근대화에 도움을 주었는가?’였습니다. 제 딸은 찬성 입장을 선택했다고 하더군요. 다른 팀들이 모두 반대를 선택해서 토론이 진행될 것 같지 않아 자기 팀은 찬성을 선택했다고 합니다. 물론 저도 이 주제와 관련해서는 반대의 입장입니다. 하지만 반대 견해를 가진 사람들의 생각은 어떤가 알아보는 것도 중요한 역사교육의 방법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전 딸에게 반론, 재반론의 입장을 몇 가지 제시해주며 격려했습니다. 물론 어느 일방의 주장만 옳다고 재단하여 강요하지 않았습니다.

제가 이번 교과서 파동으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올린 글로 편지를 마무리하려고 합니다. 선배님도 당연히 아실 내용입니다. 11월, 오랜만에 동문들이 모임을 합니다. 선배님과도 함께 만나 많은 이야기를 나누고 싶습니다. 긴 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 학생들이 패배주의, 자학사관을 현 교과서에서 배운다네요. 어이없습니다. 우리 학생들은 일제 강점기에 독립투쟁을 펼친 자랑스러운 독립투사의 역사를 배우고, 이승만 독재정권을 끝장낸 자랑스러운 4·19혁명의 역사를 배우며, 전두환 독재에 저항한 광주 시민의 뜨거운 민주주의에 대한 열정을 공부합니다. 전태일 열사를 비롯한 자랑스러운 노동자들의 투쟁과 6월 항쟁, 그 승리의 역사를 공부하고 배우는 우리 학생들이 자학사관과 패배주의를 배운다고요? 친일매국노와 독재자 일당들에게나 해당되는 말이겠지요.”

장진성 의정부 신곡중학교 역사교사

후배 장진성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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