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노조운동 관련 비리가 공개되는 건 ‘정부에 의한 노조 탄압’이 아니라 전반적인 열린 사회로 나아가는 과정에서, 과거의 관행이 더는 통용되지 않는다는 증표이기도 하다. 연초부터 일어났던 노조관련 부패로 사회적 물의가 일어났을 때만해도 몇몇의 사업장에나 있는 예외적인 일이겠거니 했다. 그러나 한국노총과 민주노총을 가리지 않고, 잊을 만하면 터져나오는 노조활동 관련 비리들은, 노조운동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들을 곤혹스럽게 만들고 있다. 그렇잖아도 노조 운동이 사회적으로 비판의 대상이 되어오던 터에 이제는 '노동운동'이라는 말조차 꺼내기 힘들게 만든다. 이러다간 노조의 존재 의의마저 상실 당하게 만드는 건 아닌지 걱정이다. 노조관련 비리를 보면서 노조부패가 생겨날 수 있는 토양이 무엇인지를 살펴보았으면 한다. 의아한 일은, 노조 부패가 이전에는 없었는데 요 근래에 부쩍 발생하는가 하는 점이다. 당연하게도 그렇지 않다. 권위주의 시대에 있었던 노조부패는 지금보다 심하면 심했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 당시 정부는 안기부와 보안사를 비롯한 사찰기구를 동원하여 돈과 회유, 권부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주겠다는 신호를 보내면서 노조활동가들로 하여금 노무관리를 대행하도록 유도해왔다. 국가는 노조간부들이 개인적 비리에 더 많이 연루 될수록 확실하게 붙잡아둘 수 있었고, 그럴수록 노조관리가 더 쉬워졌다. 노조와 국가가 공모관계에 있던 시절에는 노조부패를 덮어두는 게 서로 이익이었다. 그런 점에서 역설적으로 표현하자면 노조운동관련 비리가 공개되는 건, 한 쪽 파트너가 더 이상 그럴 의향이 없음을 나타내는 것이다. 이제 국가는 더 이상 '약점'을 확보한 것으로 노조에 영향력을 행사하지 않음으로써 노조에 거리를 두겠다는, 과거로부터의 탈피가 시작된 것이다. 최소한 수사기관이 부패와 비리에 대한 인지사실을 들이대며 회유를하던 과거의 모습은 더 이상 없어보인다. 현재 문제가 되고 있는 노조 부패는 ‘국민의 정부’ 시절에 있었던 신자유주의적 노동정책이 작업장에 어떤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했는지를 보여준다. 무리한 인원감원과 노동력 유연화는 현실적으로 작업장이 정상적으로 기능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당장 생산활동에 문제가 되었지만, 정부의 구조조정정책을 절대법칙으로 따랐던 경영진으로서는 그들의 행위를 정직하게 인정할 수가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의 잘못을 감추면서 작업장의 애로를 타개할 수 있는 편법이 비정규직 노동자를 양산하게 만든 배경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비정규직 채용이 민주적 전통을 유지하던 집행부에서 합리적으로 실리를 내세우는 집행부로 바뀐 시기에 일어났음은 주목할 만하다. 비정규직 채용을 둘러싼 비리가 일어났던 자동차 사업장을 들여다보면 바로 이러한 배경이 있었던 것이다. 국민의 정부기간 동안 정부는 모든 행정력을 동원하여 구조조정정책에 이의를 제기하는 노조 집행부를 좌절시켰다. 거듭되는 시련 속에서 노동자들은 옳은 소리를 하는 노조집행부를 부담스럽게 여기기 시작했다. 가치지향이나 이념에 동의하고 합의해서가 아니라, 정부의 눈에 거슬리지 않으면서 얼마나 ‘실리’를 챙겨 줄 수 있는지 여부가 노조 집행부를 선택하는 기준이 되었다. 노조와 집행부의 관계가 도덕과 양심으로 연계되었던 전통들이 부정되면서, 노동자들은 책임지지 않고 집행부를 탓하는 소시민성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이 같은 환경은 노조집행부의 영향력이 조합원의 신뢰와 믿음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 회사의 입김에 더 좌우되게 만들었다. 노조집행부와 노조원간의 심리적 유대가 깨지면서 노조 부패는 언제든지 실제적인 문제로 현실화될 수 있게 되었다. 조합원들이 노조에 대한 관심을 거두면서 부패를 예방할 수 있었던 노조민주주의 토양도 함께 무너져 내리는 것이다. 명백한 증거를 확보할 수 있는 ‘돈’과 관련된 비리 말고 회사의 협조 없이 밝혀내기 어려운 인사 승진 비리까지 염두해둔다면, ‘국민의 정부’시절에 있었던 노조관련 비리, 엄밀하게 말한다면 정부의 방조하에 경영진과 유착과정에서 생긴 비리는 우리의 상식을 넘어서서 많은 분야에서 있었음이 분명하다. 왜냐하면 '돈'이 오가간 통로는 노조라인만이 아니었을 것이고, 청탁과 비리를 서로 무마해주려고 만든 술자리에서 유흥비로 탕진했음을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이 가능한 작업장 풍토에서 어떤 다른 유형의 비리들이 저질러지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무리한 구조조정을 추진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비합리적인 일들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안되었던 것으로 볼 때, 아직 밝혀지지 않은 부패들이 더 많음을 누구나 짐작할 만하다.앞으로 또 어떤 노조관련 비리가 사회문제로 드러나게 될지 모른다. 노동운동은 이런 일들을 뼈저린 자성의 기회로 삼아야지, 남의 탓으로 돌려서는 안 될 것이다. 그 조직이 반성능력이 있다는 사실은 시련을 성장으로 만드는 창조적인 건강성이 남아있음을 보여주는 것이지 결코 흠이 아니다. 노동운동에 안타까워하는 사람들을 더이상 말 못하게 만들지 않도록 하였으면 하는 간절한 바람이다. 장경태/서울지하철공사 노동자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