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5.10.24 17:57
수정 : 2005.10.24 17:57
왜냐면 재반론 - 21일치 윤철호씨의 ‘불소화는 빈곤층에게 더 위험해’를 읽고
1980년대 미국의 ‘기시’라는 학자에 의하면 수돗물 불소화에 지출되는 공중보건경비 10만달러당 예방되는 충치 수가 약 50만개다. 그러나 치료에 이 비용을 쓰면 단지 1만개의 충치를 치료할 수 있을 뿐이다.
충치는 대개가 보이고 그 결과 또한 보인다. 아말감으로 때워진 이, 금니 등 치료 결과는 너무나 눈에 잘 보인다. 그러나 예방된 충치는 볼 수 없다. 그래서 사람들은 치료를 중시한다. 단지 보인다는, 볼 수 있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예방보다는 치료가 우선시된다.
1980년대 미국의 ‘기시’라는 학자에 의하면 수돗물 불소화에 지출되는 공중보건경비 10만달러당 예방되는 충치 수가 약 50만개다. 그러나 치료에 이 비용을 쓰면 단지 1만개의 충치를 치료할 수 있을 뿐이다. 10만달러의 비용으로 보이는 1만개의 충치를 치료한 치과의사는 얼마나 뿌듯할 것인가. 그러나 보이지 않는 49만개의 충치는 여전히 존재한다. 보이는 고통만이 고통이 아니다. 보이지 않아도 고통일 수 있다.
수돗물 불소화를 반대하는 분들은 현재의 고통을 외면한다. 그들에게는 충치로 인해 고통받는 사람들의 모습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윤철호씨는 말한다. 수돗물 불소화로 이득을 보는 기업이 있다고. 그럴지도 모른다. 그러나 수돗물 불소화를 하지 않으면 이득을 보는 기업은 훨씬 많다. 치과치료 재료를 만드는 사람은 물론 당장 이 사업을 주장하는 치과의사는 수돗물 불소화를 하지 않으면 이득이 훨씬 많다. 수돗물 불소화를 주장하는 것이 마치 어떤 이익을 위해서라는 식의 음모론적 이미지 덧칠은 이 사안의 진정성을 보지 않기 때문이다.
판사는 판결로 말한다는 말이 있다. 과학과 관련된 전문가는 ‘주장하는 사람’보다는 연구 결과를 더 중시한다. 그래야 정확한 판단이 되기 때문이다. 윤철호씨는 노벨 의학상을 받은 스웨덴의 아르비드 칼손 박사가 안전성에 의문을 제기하였다고 말한다. 그러나 학자인 나는 그가 ‘안전하지 않다’라고 쓴 연구논문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렇다면 전문가는 수돗물 불소화에 대한 직접적인 연구 결과를 더 신뢰할 수밖에 없다. 자연과학에서 ‘그럴 것이다’라는 식의 주장은 학문적 주장으로 받아들여질 수 없음을 유념해 주기 바란다.
윤철호씨는 어느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한 치과의사에 대해 치과의사협회 윤리위원회에 제소할 것을 고민 중이라는 〈건치 신문〉을 인용하여 마치 치과계나 학계가 진실을 억압한다는 식의 부정적 이미지를 덧씌우고 있다. 건치나 학계가 분노하는 것은 그가 수돗물 불소화에 반대했기 때문이 아니다. 불소 도포가 보험 적용이 안 된다는 사실은 치과의사면 누구나 아는 상식인데도 불소 도포가 건강보험 적용 항목인 것처럼 허위사실을 유포하는 등 상식적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발언을 했기 때문이다. 더 큰 문제는 이름조차 떳떳이 밝히지 못한 사람이 버젓이 ‘예방치과 전문의’라고 사칭을 했다는 사실이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예방치과 전문의’가 없다. 전문의가 아닌 사람이 전문의를 사칭할 경우 치과의사협회 윤리위에 제소된다.
윤철호씨는 노약자·신장질환 등을 앓고 있는 건강 약자들이 불소의 독성에 특히 취약할 수 있다고 미국 보건 당국의 자료를 인용하여 말한다. 그러나 우리나라 수돗물 불소화의 농도인 0.8ppm의 10배 농도인 8ppm의 농도에서도 신장에 어떤 유해도 발견되지 않았다. 농도와 양을 고려하지 않은 주장은 위험하다. 과량이면 비타민조차도 위험하기 때문이다. 수돗물 불소화는 이런 점을 모두 고려하여 안전하다고 판정되어 시행하는 공중보건사업이다. 윤철호씨가 인용한 미국 보건 당국의 가장 상위 기관인 공중보건청이 수돗물 불소화의 안전성을 인증한 곳이라는 점에 대해서 시선을 외면하지 말기 바란다.
단것을 많이 먹으면 충치가 생긴다는 사실은 삼척동자도 안다. 그러나 우리나라 설탕 소비는 줄어들지 않는다. 안다는 것과 행동한다는 것은 다른 차원이기 때문이다. 식습관 개선 운동,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급여 확대 등은 윤철호씨의 지적대로 중요하고 해야 할 일이다. 그렇다고 그것이 수돗물 불소화를 해서는 안 되는 이유가 될 수 없다. 적어도 현재까지는 수돗물 불소화가 가장 경제적이고 효과적이며 실천성이 높은 충치예방법이기 때문이다. 수돗물 불소화에 드는 돈은 1인당 연간 200~300원이면 충분하다.
이흥수/원광대학교 치과대학 예방치학교실 교수
광고
기사공유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