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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6.08.01 18:23 수정 : 2016.08.01 22:24

조재훈
서울 영등포구 여의도동

재혼가정에서 배우자의 자녀가 ‘동거인’으로 표기되어 당사자들이 상처를 받는다는 의견에 따라, 행정자치부는 8월부터 이 표기를 ‘배우자의 자녀’로 바꾸기로 했다. 그런데 ‘배우자의 자녀’도 결국 상처받는 건 마찬가지이니 ‘자녀’로 표기하는 게 맞다는 의견도 있는 반면, 법적으로 자녀가 아닌데 ‘자녀’로 표기하는 것은 맞지 않고, 이혼한 전 배우자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는 의견도 있다고 한다. 어느 쪽이 맞는지와 별개로, 왜 이런 논쟁이 벌어지는지 고민해봐야 한다.

내 생각으로는 현행 주민등록제도 자체에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현행 주민등록제도는 세대의 구성원을 세대의 주인 격인 ‘세대주’와 세대주에 딸린 구성원인 ‘세대원’으로 구분하고, 세대원을 표시할 때 세대주와의 관계를 반드시 표시하도록 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현행 주민등록제도는 서로 대등한 구성원이 모여서 세대를 구성할 수 있다는 점을 부정하고, 누군가가 세대의 주인으로서 다른 세대원들을 통솔하며 사는 것만을 염두에 두고 만들어졌다. 이 때문에, 세대주와 직접적 연결고리가 부족한 세대원과의 관계를 표기하기가 곤란해지는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이혼(또는 사별)으로 홀로된 ㄱ과 ㄴ이 각각 자녀 ㄷ과 ㄹ을 데리고 결혼해 하나의 세대를 구성했다고 하자. 이때 ㄱ이 세대주로 전입신고를 하면 ㄴ은 ㄱ의 배우자, ㄷ은 ㄱ의 자녀, ㄹ은 ㄱ의 ‘배우자의 자녀’(현행은 동거인)가 된다. 그런데 ㄴ이 세대주로 전입신고를 하면 ㄱ은 ㄴ의 배우자, ㄹ은 ㄴ의 자녀가 되고, ㄷ이 ㄴ의 ‘배우자의 자녀’가 되어 ㄷ과 ㄹ의 입장이 뒤바뀌게 된다. 즉, 주민등록상 ‘배우자의 자녀’로 나오는 아이는 재혼가정의 아이임이 표시되는데, 어떤 대단한 이유가 아닌 전입신고 때 누가 세대주로 전입신고를 하느냐는 우연한 사정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따라서 현행 주민등록제도 아래에서는 표기 문구를 바꾸더라도 재혼가정의 구성원과 관계자들에게 상처를 주는 것을 피할 수가 없다. 이런 문제를 피하기 위해서는 세대 구성원을 ‘주’와 ‘종’으로 구분하는 제도를 다른 제도로 바꾸어야 한다. 여러가지 방법을 고려해볼 수 있겠으나, 나는 주민등록에 세대주와 세대원의 구분을 철폐하고 세대구성원만 표기하는 방법이 어떤가 생각한다. 각자의 관계는 현행 가족관계등록부를 이용하여 증명하면 된다. 관계증명을 위해 별도의 서류를 발급받는 불편은 있지만, 누군가에게 상처 주는 것을 줄일 수 있다면 더한 불편도 감수할 필요가 있다.

현행 주민등록제도의 세대주, 세대원이라는 구분에는 가족을 ‘호주’와 그 외의 사람으로 구분하였던 종전 호주제의 폐해가 그대로 남아 있다. 이미 호주제를 폐지한 마당에 주민등록상의 세대주를 폐지하지 못할 이유는 없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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