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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1.31 18:45 수정 : 2018.01.31 19:33

김영일 남북투자기업협의회 회장·효원물산 회장

‘남루한 옷에 아기를 등에 업고 어린 딸 손을 잡은 어느 엄마가 길을 막는다. 작은 비닐봉지를 들어 보이며 해삼을 사달란다. 외화를 건넸다. 너무너무 좋아한다. 가면서도 계속 뒤돌아보며 고맙다고 인사한다.’

1996년 10월 함경도 나진·선봉국제회의를 마치고 인근 비파섬을 돌다 마주친 어느 북한 가족에 대한 기억이다. 그때 초라했던 엄마와 아이들을 생각하면 지금도 내 가슴을 울린다. 97년 다시 이곳을 찾았을 땐 놀랍게도 북-중 접경지대에 시장이 열렸다. 식량난으로 개인에게 텃밭 소유를 인정하고 시장 활동도 허용한 것이다. 당시 북한은 배급제도가 무너져 수많은 아사자가 발생한 ‘고난의 행군’ 시기였다. 지금은 북한 전역에 400여개 시장이 조성됐고, 신흥 부자 ‘돈주’가 주도하는 자본주의 시장체제가 정착됐다. 각 공장과 기업소는 독립채산제로 운영되고, 휴대폰도 400만대로 늘어났다. 지금 평양에서 휴대폰으로 중국 단둥에 상품을 주문하면 2일 안에 배달된다.

정부에 묻고 싶다. 압박과 제재만으로 북한이 핵을 포기하겠는가? 기회는 있었다고 들었다. 2013년 박근혜 정부 출범 직전 북한은 비공식 라인을 통해 6단계 비핵화 로드맵을 제시했다고 한다. 그러나 무시됐다. 지난해 내내 국민은 불안했다. 북핵 리스크와 미국의 선제타격 우려 탓이다. 1999년, 2002년에도 위기는 있었다. 1~2차 연평해전이다. 그때는 금강산 관광 등 남북 경제교류가 활발히 진행되었을 때라 전쟁의 확산을 막았다. 지금은? 남북 간 신뢰의 끈인 내륙경협,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이 모두 폐쇄돼 문재인 정부는 북한에 내밀 카드조차 거의 없다.

지금까지 한반도를 둘러싼 핵게임의 최대 수혜자는 누구일까?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다. 한 사람은 한국과 일본에 막대한 무기 판매, 사드 배치, 전략자산 순환배치 등으로 명분과 실리를 챙겼다. 또 한 사람은 ‘핵무력 완성’ 선언으로 국제적 위상이 올랐다. 어쩌면 서로 윈윈 게임을 했다. 한국은? 사드로 중국 관계가 악화됐고, 중국은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순환배치로 불만에 차 있다.

얼어붙었던 한반도에 훈풍이 불고 있다. 올해 들어 남북은 ‘북한 올림픽 참가’, ‘군사회담 개최’, ‘한반도 문제 남북 당사자 간 해결’ 등을 합의하고, 평창올림픽 남북 단일팀 구성, 한반도기 공동입장 등 11개항을 채택했다. 특히 북한은 남쪽 단체들과 개별 인사의 북한 접촉, 방북의 길도 열어놓았다. 이젠 북한 현지에서 뛰어온 ‘민간 선수들’이 나서야 한다. 평창 이후 남북관계를 어떻게 관리하고, 미래를 어떻게 디자인하느냐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비록 5·24 조치로 길가에 버려졌지만, 이들 경협인의 30년 대북 노하우를 살려 평창 평화 분위기를 이어가고 먹고사는 민생 문제에 나서자는 것이다. 1차는 개성 경협사무소를 다시 개소해 남북 간 수시 만남과 대화의 장을 열어주어야 한다. 우선은 국제사회가 인정하는 ‘지원과 경협’을 통합한 인도적 협력사업을 시작으로 하여, 단계적으로 내륙경협, 금강산 관광, 개성공단 사업을 재개하자. 이 카드를 남북 및 북-미 대화로 이어가 북핵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2차는 한반도 신경제지도 입구인 개성·파주를 경제특구로 지정해 해외 및 남북이 함께 참여하는 ‘개성국제시장’을 조성하자. 북한의 400여 장마당과 남쪽을 하나로 묶는 남북 단일시장권을 구축해 먹는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이젠 더 이상 한반도의 운명을 남에게 맡길 수 없다.

그래서 대통령께 건의한다. 청와대 문을 활짝 열고 5·24 조치로 길가에 버려진 ‘경협 전사’들을 초대해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대북 현장의 소리를 한번 들어보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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