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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18.02.21 18:44 수정 : 2018.02.21 19:39

김윤철 서울시 동작구 상도동

입대하고 신병 때는 사회와 군대의 괴리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었습니다. 군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에야 충격적인 사실에 눈떴습니다. 그 괴리가 ‘미필’이 본 허상일 뿐 존재한 적 없었다는 사실 말입니다.

직장이 또 다른 군대라는 말은 더 이상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대학 가는 입학철마다 군기 문화로 물의가 빚어지고, 정치 뉴스에는 여전히 ‘주군’ ‘충신’ 등 상명하복의 언어가 자주 보입니다. 문화계, 의료계, 법조계 할 것 없이 사람이 모인 곳에서는 어김없이 군기가 싹틉니다.

돌아보면 입대 이전의 삶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초등학생 시절 열중쉬어 자세로 도열해 훈화를 듣는 것은 일상이었고, 반장은 떠드는 사람 이름을 적고, 6학년은 5학년 축구공을 뺏었습니다. 현재 한국여성정책연구원 원장인 권인숙 교수는 2005년 당시 학생운동의 군대 문화를 뼈아프게 자성한 책을 내며 <대한민국은 군대다>라는 제목을 달았습니다. 신입사원들이 생리주기까지 조절하며 100㎞를 행군해야 하는 오늘날, 그의 진단은 여전히 현재형입니다.

문제는 군대가 제 기능을 넘어 시민 양성소의 역할을 맡게 됐다는 데 있습니다. 학자들은 가족이 우리나라의 공동체 개념을 독점함에 따라 시민사회의 발달이 미약해졌다고 말합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독재를 거치는 동안 그 빈자리를 메운 군사주의는 여전히 시민성을 대신하고 있습니다. 공적 관념과 동떨어져 살던 개인들은 군대나 직장에 들어가 처음으로 공동체를 맞닥뜨리고, 그에 맞춰 모든 것을 개조하도록 요구받습니다. 조직원들은 이 ‘고문관’들에게 다짜고짜 군기를 주입합니다. 그 과정을 견딘 이들이 조직에 흡수되어 군기를 만사의 지침으로 받들고, 받은 것을 똑같이 돌려주는 악순환이 사회 각계에서 반복됩니다. 군대 다녀와야 사람 된다는 말은 군기와 시민성이 구별되지 않는 현실을 고스란히 보여줍니다.

그 결과 우리 사회는 처세술이라는 미명 아래 온갖 비합리를 정당화하는 곳이 되었습니다. 야근이 예사고, 가혹행위가 추억되고, 알바생이 쓰레기를 손으로 줍지 않으면 혼이 나는 수수께끼는 고통과 타율로 움직이는 군대 문화로만 설명 가능합니다. 이견을 억누르는 풍토는 아픈 사람 있냐는 질문에 다 같이 ‘없습니다’라고 답해야 했던 훈련소를 떠올리게 합니다. 눈치 보기에 급급한 날림 행정이 쏟아지는 것 역시 고압적인 위계질서 탓이 큽니다.

원자적 개인으로 살다 군기로 헤쳐모이는 대신 우리의 사회적 숙명에 대한 자각을 공유하는 동등한 인간으로 만나는 것. 그렇게 마음속에 돋아난 작은 광장들에서 저마다 촛불을 밝혀 내면화된 규율을 몰아내는 것. 이러한 마음의 변화가 지난해 겨울의 열기를 이어받아 내용적 민주주의를 완성하는 마지막 퍼즐 아닐까요. 고깃집 불판 앞에서 나이를 계산해야 하고, 블루스 추자는 ‘괴물’들이 그 자리에서 이구동성으로 저지될 수 없는 한 자괴감은 멈추지 않을 것입니다. 군기라는 차벽이 걷힌 마음속 광장이 자라나는 날을 그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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