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이제 진보진영도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폭력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이제 분파활동을 중지하고 하나로 통일되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정파활동을 해야 할 때이다. 최근 몇 년 동안 병마와 싸우면서 주로 요양생활을 하고 있다. 그런데 내가 병마와 싸우는 동안 진보진영 또한 여러 가지 측면에서 앓고 있다는 생각이 들어 동병상련의 심정으로 이 글을 쓴다. 지난 몇십년간 진보진영은 평등사회와 민주화 그리고 민족통일을 위해 온몸과 정열을 바쳐 폭력적 정권과 투쟁해 왔고 그 투쟁의 정당성을 국민들로부터 인정받아 왔다. 그런데 최근에는 상황이 약간 달라지고 있는 것 같다. 진보진영이 국민들로부터 차츰 신뢰를 잃어가고 그 영향력이 줄어든다는 증거가 곳곳에서 나타나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러한 진보진영의 신뢰 상실이 외부적 요인보다는 진보진영 내부에서 파생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다. 부끄럽지만 들추어 내놓고 해결책을 찾아보자. 먼저 진보진영의 가장 큰 문제는 주장한 것만큼 행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보자. 평등사회를 주장하는 노동운동에서 대기업 정규직 노조가 비정규직 노동자나 하청공장 노동자들과의 차별을 줄이기 위해 얼마나 노력해 왔는가? 또한 노동운동 전체 차원에서 외국인 노동자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무엇을 해 왔는가? 목소리는 있지만 가시적인 노력이 부족하다. 또한 교육운동을 하는 교사들은 학생들이 신음하는 입시 위주의 교육현실이 얼마나 개선되고 있는지, 환경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처럼 환경친화적으로 살고 환경친화적으로 문제를 해결하고 있는지 점검해 보아야 한다. 그러나 어디에도 스스로의 주장을 실천하고 있는지에 대한 점검이 부족하다. 게다가 진보운동을 한다는 사람들의 도덕적 해이가 도를 넘었다. 사회개혁을 주창하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서 가장 문제가 되는 부패에 연루되기도 하고, 공식 회의 석상에 폭력이 동원되는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다. 현재 국민들이 문제 삼는 것은 이렇듯 스스로 주장한 것을 실제로 실천하지 못하고 현실과 타협하고 있는 진보운동 내부의 부끄러운 단면이다. 두번째, 소위 정파라고 불리는 내부분열이 진보진영을 약화시키고 신뢰를 떨어뜨리고 있다. 현재 민주노총과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거의 모든 진보세력들이 정파로 인한 내부분열과 대립으로 홍역을 앓고 있다. 흔히 진보진영의 건전한 정파 활동은 진보진영의 발전에 필수적이라고 하지만, 당파성은 하나로 통일될 때 그 의미가 살아나는 것이다. 지금처럼 진보진영 내부가 정파로 분열되어 서로를 인정하지 않고 심지어 서로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진보진영의 행보가 아니다. 이제 진보진영도 자기 생각만 옳다고 주장하는 것이 폭력의 시작임을 알아야 한다. 실제로 진보진영 내부는 의견 차이로 물리적인 폭력뿐만 아니라 사이버상의 언어폭력도 난무하고 있다. 이제 진보진영은 내부 분열과 불신을 조장하는 분파활동을 중지하고, 하나로 통일되어 더 큰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건강하고 생산적인 정파활동을 해야 할 때이다.세번째, 진보진영에서 주장하는 정책적 대안이 미흡하다는 점을 거론하지 않을 수 없다. 진보진영이 말로는 정책개발을 주장해 왔지만 실제로는 현실에 부닥치는 문제를 해결하기에도 급급해 정책개발 영역에 인력과 시간을 투자하지 못했다. 그래서 진보진영의 정책적 대안은 오랫동안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 미흡한 정책적 대안으로는 투쟁 일변도의 해결 방식밖에 없으며, 이는 ‘투쟁 지상주의’를 낳는다. 그런데 그러한 투쟁도 거의가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저지 투쟁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진보진영의 정책을 실현하고 실천하기 위한 쟁취 투쟁이 줄어들고 있다. 이제 진보 진영은 ‘투쟁으로 저지하는 운동’보다는 ‘정책으로 쟁취하는 운동’과 ‘대중적으로 실천하는 운동’에 더 관심을 쏟아야 할 것이다. 위에서 언급한 진보진영의 산적한 문제점들을 진보진영 스스로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최근 진보진영 내부에서도 자기 혁신이 화두가 되고 있다. 그렇다면 진보진영의 개혁은 어디에서 출발해야 하나? 바로 진보진영에 속한 개개인과 각 집단이 스스로 반성적으로 성찰하는 것에서 실마리를 찾아야 한다. 진보진영이 자신을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병의 근원을 파악하여 스스로 처방을 찾아야 한다. 불가에서 말하는 ‘몸에 병이 없기를 바라지 말고 오히려 병고를 양약으로 삼으라’는 충고를 받아들여야 한다. 그래야 진보진영의 병세가 더 악화하지 않을 것이다. 자신을 제대로 볼 때 상대방도, 우리가 사는 세계도 제대로 보이는 법이다. 예전처럼 진보운동에 대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박수치는 국민이 반대로 손가락질하지 않도록 진보운동은 철저하게 자기 성찰을 해야 할 시점이 되었다. 김현준/전교조 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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