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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2 18:26 수정 : 2005.12.22 18:26

왜냐면

장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지도교수의 힘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잘못을 밖으로 알리려면 학계를 떠날 각오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다.

다른 곳과 마찬가지로 최근 과학계의 가장 큰 화제는 단연 황우석 교수를 둘러싼 논란이다. 그러나 그 와중에 묻히고 지나간 한 사건을 다시 끄집어내었으면 하는데, 연구비 횡령으로 교수 두 명이 구속되고 다른 두 명이 불구속 기소된 12월11일치의 기사가 그것이다.

황우석 교수 사건과 연구비 횡령 사건은 상당히 흡사한 면이 있다. 먼저 연구원들이 연구 책임자인 교수의 부당한 요구에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다”며 맥없이 굴복했다는 점이 그렇다. 전자의 경우 월 40만원에 ‘월화수목금금금’이라는 과도한 노동에도 불구하고 논문의 공로는 윗선끼리 나누어가졌으며, 연구원은 양심에 반해 결과를 조작할 것을 종용받았다. 더욱이 연구원이 난자제공 과정에서 강압을 받았다는 충격적인 이야기도 조금씩 흘러나오고 있다.

연구비 비리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장래 진로를 좌우할 수 있는 지도교수의 힘 때문에 대학원생들은 잘못을 알면서도 감히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며 밖으로 사건을 알리려면 학계를 떠날 각오까지 해야 하는 형편이다. 또 정작 문제가 불거져 지도교수가 물러나도 결국 대학원생들은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그 실험실의 대학원생 모두가 그간 밟아온 학위과정을 위협받게끔 교수를 의존하는 구조로 대학원이 짜여져 있기 때문이다. 내부적으로 해결할 길은 거의 막혀 있는 셈이다.

물론 모든 교수가 부정에 연루되어 있다고 말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그러나 어느 집단에나 약간씩의 문제가 일어나게 마련이며, 이에 어떻게 대처하는지가 그 집단의 건강성을 보여준다. 여기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도 그러한 자정 구조가 너무 미약하다는 점인데, 한국 과학이 세계적인 수준으로 진입하는 과정에서 이러한 부분들이 계속 한계를 드러내는 것이다.

이런 시기에야말로 기본을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과학 한국’의 길은 비판정신의 활성화와 연구원 인권의 보호에서부터 다시 출발해야 한다. 만일 이들의 지위를 더 철저히 보호함으로써 부당한 권위 앞에서도 말할 수 있는 길을 터주었다면 많은 오류가 미연에 방지될 수 있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폐쇄적인 의사소통 구조 속에서 문제는 곪게 마련이다. 대학원의 구성원들이 상하관계가 아니라 연구의 동반자로서 건전한 긴장관계를 유지하는 것만이 근본에서부터 연구 환경의 정직성을 담보하는 길이다.

우선 한 명의 교수에게 전적으로 의존하게끔 되어 있는 도제식 관계를 느슨하게 풀어놓을 필요가 있다. 이를테면 공동 지도교수 제도를 도입하는 한편 지도교수 변경을 유연하게 하고, 그에 따른 학위 이수 기준의 객관화가 준비되어야 한다. 제도적으로는 노동자로 인정받지 못하는 대학원생의 법적 지위를 보완하여 스스로를 보호할 수 있게끔 보장해야 할 것이다.


과학의 위상이 실추되었다는 우려에도 불구하고, 젊은 과학자들이 신화 앞에 무릎꿇지 않았다는 사실은 오히려 한국과학의 밝은 미래를 보여주는 듯하다. 이번 기회를 통해 권위를 의심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풍토가 한국사회에 조성된다면 그것은 스타 과학자의 존재나 정부의 지원책보다도 훨씬 과학의 발전에 이로울 것이기 때문이다. 이 일들이 과학계의 뿌리를 다시 다지고 새로이 출발할 수 있는 학습의 기회로 작용하기를 바란다.

백승기/한국과학기술원 대학원 총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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