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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19:57 수정 : 2005.12.29 19:57

왜냐면

남을 억누르며 남이 지닌 것을 빼앗아 챙기며 남 위에 선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뒤진 나라(후진국) 사람들이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억누르며 남이 지닌 것을 빼앗아 챙기며 남 위에 선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뒤진 나라(후진국) 사람들이다.

28일치 <한겨레> 둘째 쪽에는 통계청에서 낸 ‘생활시간조사’라는 기사가 크게 실렸다. ‘한국인, 덜 자고 더 일한다’는 제목의 기사는 이렇게 시작하고 있다. “우리나라 성인들은 선진국 성인들보다 일은 많이 하고 잠은 적게 자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 우리나라 남성들의 가사노동시간은 미국이나 독일 남성의 3분의 1 수준에 그쳤다.”

이 말의 쓰임새 속에는 노예와 주인, 상전과 하인 또는 상전국가와 하인국가라는 무의식적 의도가 숨어 있다. 그것은 첫 문장 임자말을 풀이하는 ‘선진국’이라는 말 속에 들어 무서운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 윗글로 보면 미국과 독일은 선진국이 된다. ‘앞선 나라’ ‘뒤진 나라’라는 이 말은 누가, 널리 쓰도록, 만든 관념 퍼뜨리기일까? 이런 말로 우리를 포위하여 옥죄는 포위관념은 우리 옆에 엄청난 숫자로 널려 있다. 그것은 아마도 일본에서 만들어 수십년 이상 펼쳐 퍼뜨린 정치용어였을 것임에 틀림없다.

그러면 무엇이 앞선 것이고 무엇이 뒤진 것일까? 이 물음에 대한 대답도 이미 분명한 것으로, 누구나 그것은 당연한 것처럼, 한국 지식인들은 인식하여 오고 있다. 수십년 이상 우리는 그렇게 교육받았고 또 그렇게 교육했기 때문이다. 과학이 발전하여 상공업이 앞서 시작되었고 인권을 공평하게 다루는 민주주의 정치체제가 수백년 앞섰으며, 그러므로 도덕적으로도 언제나 그들은 앞서 있는 종족이라는 것이다.

반면, 우리들 한국인이나 기타 동·서쪽 아시아 사람들, 아프리카, 요즘에는 프랑스에 살고 있는 이슬람을 믿는 아랍계열 사람들, 이들은 근원적으로 뒤진 종족이며 그들 자체가 미개하거나 야만 수준에 그치는 인종인 것이다. 이것이 일반화된 서양인들의 머리 속에 박힌 편견이고 야만적 자기기만이며, 치명적인 열등감을 드러냄이다. 그것은 그대로 우리 지식사회에 받아들여져 스스로 나의 나됨을 낮추는 노예 말로 일관하여 써오고 있다.

모든 사람들을 순차적인 질서에 놓고 보려는 발상이란 그것 자체가 온전히 야만적인 사람됨을 드러내는 좋은 본보기이다. 사람이란 일등, 이등, 앞선 사람 뒤진 사람, 잘난 사람 못난 사람 따위 존재 차원의 말길로 재단할 수 없는 절대가치를 지닌 존재이다. 의미 차원의 하나일 도덕적 잣대로 사람됨을 따지고 그것을 바른 말로 세워야 제대로 된 나라 사람들이고 지식인다운 말 쓰기일 터인데 우리는 그렇지 못하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남을 억누르며 남이 지닌 것을 빼앗아 챙기며 남 위에 선 사람이라고 스스로 여기는 사람들이야말로 뒤진 나라(후진국) 사람들이다.


오늘날 서양인들은 대체로 치명적인 열등감을 지녔던 과거의 상처(그들이 과거에 지녔던 야만성)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남들을 억누르는 야만행동을 지속해 왔다. 앞에서 기자들이 선진국이라고 썼던 미국인들이, 세계 30여개 이상 남의 나라에 미군을 주둔시켜 놓고, 말이 되지 않는 민주주의를 팔아먹는, 그런 야만성을 무턱대고 앞선 나라라고 마구 써도 바른 말이 되는 걸까? 힘이 센 나라는 조건 없이 앞선 나라일까?

1000년 전만 해도 그들 호서인(작가 박상륭이 부르는 서양의 다른 이름)은 야만족들이었고 지금도 그들은 남들에게서 여러 종류의 자원을 빼앗아 그 나라를 버티는 그런 도덕적 뒷전의 나라들이다. 이런 나라들을 무조건 앞선 나라(선진국)라는 말로 써서는 안 된다. 말글 쓰기로 비교가 꼭 필요하다면 그냥 미국, 프랑스, 독일 따위로 쓰면 민주주의, 문화 다양성 등 원리에 모두 맞는 바른 말글이 된다고 믿는다.

정현기/연세대 교수·우리말로 학문하기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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