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냐면
자율성은 사학만이 아니라 교육 전반에 더욱 확대되어야 할 가치다. 분명한 것은 자율성이 사학 재단만의 자율성이 아니라, 학생·학부모·교사·지역 사회 등 학교 구성원 전체의 권리라는 사실이다. 지난날 사립학교에서 해직되었던 교사다. 사학법 개정을 둘러싼 힘겨루기가 도를 넘어도 한참 넘었다. 정치권, 언론계, 종교계, 학계 할것없이 이 나라의 보수라고 지칭되는 모두가 왜 저렇게 개정 사학법 총력 반대에 나섰을까? 우리의 왜곡된 역사를 더듬어 보면 그 실체를 알 수 있다. 번드르르한 논리의 정합성보다, 좀 투박하더라도 솔직히 진실을 말하도록 하자. 물론 ‘하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럼 없는’ 건전 사학은 당연히 예외다. 사립학교는 구한말에 엄청나게 세워졌다. 제국 열강의 침략 앞에 근대화와 독립이라는 구국의 차원에서 인재를 기르기 위해 동네마다 하나씩 만들어진다. 이에 일제는 1908년 ‘사립학교령’을 필두로 ‘사립학교 규칙’과 ‘조선교육령’을 만들어 기준과 규제를 강화하여 사학을 탄압하였다. 그 결과 5천여 개교에 이르던 사학이 거의 문을 닫게 된다. ‘민족 사학’의 싹은 이 때 다 잘리고, 그 뒤는 치욕스런 순응의 길로 접어들게 되었다. 또 하나의 격변은 해방 공간에서 일어난다. 해방된 나라에서 교육에 대한 욕구는 열화같이 일었으나, 정부는 이를 감당할 여력이 없었다. 그러자 이승만 정부는 육영사업에 투자하는 토지는 토지개혁 대상에서 제외하기로 한다. 일제 치하에서 수많은 백성들이 굶주려 죽는 상황에서 일제와의 짬짜미 속에 토지를 늘려온 지주들은 너도나도 토지 몰수를 피해 사학을 설립한다. 보수적인 종교 교단에서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것도 비슷한 배경이다. 종교계를 중심으로 3·1운동이 준비되고 폭발한 것을 겪은 일제는 종교계를 철저히 식민화한다. 일제 말이 되면 극소수를 제외하고는 거의가 황국신민화에 복무하게 된다. 해방 후 이들은 다시 사대화의 길을 걷게 된다. 신도 수를 계산하여 교회를 매매하고, 자식에게 상속하는 등 일부 지탄받는 행위처럼 설마 사립학교도 개인 소유의 성역으로 오해하고 있지는 않으리라 믿고 싶다. 수십년 이어진 군사독재는 사학의 모순을 심화시키게 된다. 선진 기술을 잘 베껴야 하는 산업화 초기에 독재정권이 학교에 요구한 것은 두 가지이다. 말 잘 듣는 노동자를 육성하는 일과 독재정권의 이데올로기를 홍보하는 교육이 그것이다. 이 두 가지만 무난히 수행하면 사학의 웬만한 비리와 부정은 눈감아 주었다. 이 때 정권과 사학과 관료의 유착이 심화되었다. 몇몇 사학은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판잣집으로 시작해 유치원부터 대학까지 계열사를 거느린 학원재벌로 성장하기도 하였다. 이번에 개정된 사립학교법은 90년에 개악된 내용을 일부 회복한 면이 있다. 현 한나라당의 전신인 민자당에서 당시 사학 교주이던 의원들이 주도하여 친인척의 사학 경영을 대폭 허용하는 등 재단의 권한을 강화한 사학법을 개악하여 오늘에 이르른 것이다.권력은 독점하는 것이 아니다. 여럿이 나누어야 썩지 않는 법이다. 무얼 그리 가리고 감출 게 많은가? 밝은 햇빛을 두려워하는 것은 병균밖에 없다.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사람들은 사학의 자율성을 말한다. 자율성은 사학만이 아니라 교육 전반에 더욱 확대되어야 할 가치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자율성이 사학 재단만의 자율성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 올바른 개념은 학생, 학부모, 교사, 지역 사회 등 학교 구성원 전체의 자율성이라는 사실이다. 그들은 법 개정을 무효화하지 않으면 교문을 닫겠다고 한다. 우리 식구 네 명이 다녔거나 다니고 있는 학교를 따져보니 15개교 중 8개교가 사학이다. 사학 문제는 국민 모두의 문제라는 말이다. 전교조가 창립할 때 한국의 보수들은 하나같이 ‘악법도 법’이라며 법을 지킬 것을 합창했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란 말인가? 개정 사학법을 반대하는 이 땅의 보수들은 국민에게 을러메기 전에 역사를 반추하고 자신을 성찰하기 바란다. 눈 피해로 절망한 농민들의 슬픈 눈빛과 사학에서 공부하는 아이들의 맑은 눈빛이 두렵지 아니한가. 신연식/서울 서초중학교 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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