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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5.12.29 20:00 수정 : 2005.12.29 20:00

왜냐면 - <한겨레> 26일치 브시바오 주한 미국대사의 글을 읽고

미국이 핵 선제공격 입장을 정하지 않고 북한을 핵 선제공격의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면 북한에게 핵을 가질 명분이 있었을까요?

브시바오 대사님의 글은 잘 읽었습니다. 대사께서 한국에 계신 지난 두달 동안 많은 한국 국민들은 고통스러운 삶을 경험했습니다. 전라도와 경상도를 비롯한 농촌지역에서는 농민들의 통곡소리와 한숨소리로 땅이 꺼지는 듯합니다. 미국이 밀어붙이고 노무현 정부가 받아들인 ‘쌀개방’이라는 이름의 ‘식량주권 포기’ 때문입니다. 식량주권 수호를 주장하는 시위를 벌이던 중 한국 경찰에 맞아 한국 농민 두명이 저 세상 사람이 되는 비극이 벌어졌습니다.

또 브시바오 대사께서 한국민들의 마음과 정서를 조금도 아랑곳하지 않는 듯한 자세로 대북 강경 발언을 쏟아내는 탓에 속이 매우 불편한 시간이었습니다. 대사께서는 “북한은 범죄정권”이니 혼내주어야 한다고 ‘일장 훈시’를 하시고 또 남북 경제교류에 제동을 거는 내정간섭 발언도 거침없이 하고 “미국은 한국 정부의 노력을 조정할 수 있다”는 굴욕적인 말까지 서슴없이 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속이 끓어올라 소화가 안 되었습니다.

지면을 빌려 몇 가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미국은 북한보다 만배, 아니 수십만배 더 많고 더 위력적인 핵무기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 배치하고 언제 터뜨릴지 모른다고 협박하는데 그것이야말로 범죄행위 아닐까요? 더욱이 세계 대다수 나라들이 반대하는 걸 알면서도 신형 핵무기를 만드는 실행계획을 추진하면서 그건 세계 평화를 위한 것이라고 말하실 건가요? 엄청난 규모의 무기를 만들어 세계 곳곳에 내보내고 아프가니스탄, 이라크를 침공해서 세계가 편할 날 없게 만드는 미국의 행동은 선인가요?

북한이 핵무기를 갖게 된 게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사실 미국은 그동안 핵확산금지조약(NPT) 정신에도 정면으로 어긋나는 행동을 수도 없이 했습니다. 미국이 핵 선제공격 입장을 정하지 않고 북한을 핵 선제공격의 대상으로 지목하지 않았다면 북한이 핵을 가질 명분을 밝힐 수 있었을까요?

미국은 석유 장악과 중국 포위라는 자신의 ‘전략적 이유’로 주권국가 이라크를 침략했습니다. 물론 전쟁 명분으로 삼은 대량살상 무기에 대한 어떤 증거도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이라크 침략, 이 한가지 사실만으로도 부시 정권이 범죄를 지었고 부시가 전범이라는 것을 입증하는 데는 아무런 부족함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당신들이 마치 장난처럼 쏘아댄 대포와 미사일과 총탄을 맞고 수많은 민간인, 그 가운에서도 어린이들이 죽어갔습니다. 물론 이라크의 군인, 경찰 역시 죽어갈 어떤 이유도 없는 건 물론입니다. 팔루자의 학살은 우리나라의 광주학살 만행 바로 그것이었습니다. ‘백린’이라는 인체에 치명적인 무기까지 써가면서 말입니다.


대사님의 나라가 이라크를 침략하는 전쟁을 벌였을 때 나는 갓난아이 둘을 키우고 있었습니다. 대사께서도 아이를 키워보셨으리라 짐작하지만 아이들은 작은 소리에도 잠을 깨고 때로는 불안해합니다. 그런데 미군이 대포와 미사일을 이라크 사람들이 사는 주택이나 주택 근처에 떨어뜨렸을 바로 그 때, 그 아이들의 모습이 어떠했겠습니까? 한번 상상해보셨습니까? 나는 그 때 곤히 잠든 우리 아이들을 바라보면서 소름이 끼쳐옴을 느꼈습니다. 치가 떨렸습니다.

대사께서는 미국이 6자회담의 의지는 변함이 없다고 말하셨지만 믿음이 가지 않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최근의 미국의 행동을 살필 때 미국이 6자회담의 판을 깨고 싶어하는 것 아닌가, 한반도 평화체제를 원치 않는 것 아닌가, 한국이 통일을 향해 한 걸음 더 나아갈까봐 두려워하는 속내를 드러내 보인 게 아닌가 하는 강한 의문이 듭니다. 대사께선 ‘북한이 핵 폐기 약속을 이행할 때 미국도 공동성명에 따른 의무를 다할 것이고, 이 두 가지는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했지만 사실 미국은 동시이행의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방안을 전혀 제시하지 않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북한을 전방위로 압박하는 전술을 펴고 있는 게 사실 아닙니까?

한국인들 사이에 ‘브시바오 대사를 본국으로 돌려보내자’는 여론이 높아지고 있는 점을 잘 새겨 듣고 앞으로는 언행에 신중하시기 바랍니다. 한국의 역대 독재 정권들을 지지하여 한국의 민주화에 걸림돌로 작용한 미국이 한반도 평화 체제와 통일을 향한 큰 걸음에 계속 딴지 걸고 대사께서 내정간섭 발언을 계속하신다면 한미 관계는 돌이킬 수 없는 상황으로 변화될 것임을 잘 인식하시기 바랍니다. 대사님의 가정에 평화가 넘치기를 바랍니다.

최창우/국가보안법 폐지를 위한 시민연대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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