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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6 20:53 수정 : 2006.02.06 20:53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세상읽기

지난달 국가인권위원회가 ‘국가인권정책 기본계획 권고안’을 발표하자 한 보수 언론은 ‘무국적 집단’이라며 인귄위를 맹비난 했다. 연이어 경제5단체장은 긴급회의를 열고 권고안이 ‘우리 사회 일부 진보세력의 주장만을 반영하며 균형 감각이 결여됐다’ ‘국민정서를 전혀 고려치 않고 있다’면서 그것이 ‘안보와 사회질서의 근간을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내가 보기에는 이런 주장이 비난이 아니라 인귄위의 근본적인 성격을 정확하게 지적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비판보다는 과찬이 아닐까?

인권은 인류의 보편적 가치다. 그것은 성, 인종, 민족, 국적, 장애 여부, 계층 등을 넘어서 지구촌에 존재하는 모든 인간 개개인에게 적용되는 가치다. 이미 이것은 1948년의 세계인권선언에서 명문화된 바 있고, 여러 차례의 국제협약에서도 확인되었다. 특정한 국민국가가 그 국적을 갖고 있는 시민의 인권을 훼손할 때 그것에 대해 당사자 개인이 국제기구에 항의 제소를 할 수 있는 권리도 보장되는 추세다. 만약 인귄위가 ‘국적’을 기준으로 인권 문제를 다룬다면 그것은 얼마나 협소하고 폐쇄적인 방향으로 가게 되겠는가. 그러기에 소위 ‘국민정서’에 영합하지 말아야 한다.

과거 독재시절 ‘한국적 민주주의’와 ‘안보’ ‘사회질서’를 명분으로 민주주의와 인권에 대한 침해를 정당화하는 언설들이 얼마나 많았는가? 지금도 ‘사회주의 국가의 특수성’ ‘문화적 특수성’이란 그럴 듯한 이유를 앞세워 인권침해를 은폐하는 국가들이 얼마나 많은가? (물론 미국의 인권외교에 제국주의적이고 위선적인 자국중심적 태도가 들어있는 것은 경계해야 할 사실이다). 만약 인권이 국적에 따라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는 가치라면 대한민국 국적이 아닌 이주노동자나 북한주민의 인권에 대해서는 침묵해야 하는가. 한국 국적 중심의 사고만을 한다면 다른 나라에서 벌어지는 인권침해에 대해서는 눈을 감아도 되는 것인가.

세계화 시대에 기업들은 항상 다국적·초국적을 강조하고 ‘글로벌 스탠더드’를 강조한다. 하지만 왜 유독 인권에 대해서는 국가 안의, ‘일국적’에 바탕한 판단을 요구하게 되는가?

인권은 국민국가의 제약을 받으면서도 그것을 벗어나려는 역동적인 가치다. 따라서 그것은 미래지향적이고 진보적일 수밖에 없다. 정치·사회적 권리에서 나아가 경제적 생존권, 노동권 등을 인권에 포함시키는 노력이 더욱 강해지는 이유이기도 하다. 또한 인권은 ‘편파적’이다. 왜냐하면 항상 인권침해는 사회적 강자가 사회적 약자에 대해 가하는 폭력이기 때문이다. 사회적 소수자를 편드는 것, 아웃사이더의 권리를 최대한 존중하는 것이 아니라면 인권이 왜 필요하겠는가?

헌법이나 헌법재판소의 판결을 존중하고 수용해야 하지만 그것이 만약 전지구적 관점에서 인권을 보호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그것을 비판하고 수정하는 방향으로 이끌도록 노력하는 게 국가인권위원회의 역할 중 하나다. 더구나 인권위는 판결하는 곳이 아니라 ‘권고’하는 것이라는 점을 생각해야 한다.

누구든 인권위를 비판할 권리는 있다. 하지만 이런 비난을 보면서 어쩌면 한국사회에서 이렇게 인권에 대한 이해가 저급한가 하는 느낌을 뿌리칠 수 없었다.

인권위는 더욱 ‘무국적’적인 판단이 필요하고, 한국사회의 인권은 ‘글로벌 스탠더드’에 근접하도록 나가야 한다.

권혁범/대전대 교수·정치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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