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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 : 2006.02.07 17:38 수정 : 2006.02.07 17:38

정석구 경제부 선임기자

아침햇발

“만날 서민들 등만 쳐 먹는 그런 나라!”, “빨리 이민가야지. 이 나라에서 태어나면 그때부터 세금 내는 기계가 된다.” 최근 재정경제부 홈페이지의 자유발언대에 올라온 누리꾼들의 글 중 일부다. 정부가 추진 중인 1~2인 가구 소득공제 축소나 부가가치세 감면 축소(결과적으로 증세) 등에 대한 반응들이다.

다소 선정적인 표현이 많기는 하지만 이런 반응들에 주목하는 까닭은 두 가지다. 하나는 정부가 추진 중인 조세 개편 방향에 대한 반발이 일부에 국한된 게 아니라는 점이다. 더 큰 이유는 이런 반발이 궁극적으로는 정부의 조세권을 부정하는 것으로서, 국민과 정부 사이의 신뢰 관계를 심각히 훼손하는 중대한 사안이기 때문이다.

지난 1월 말 1~2인 가구 소득공제 축소 방침이 발표된 뒤 재정경제부 홈페이지에는 무려 1500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글을 올렸다. 정부의 특별공제 축소를 반대하는 내용이 대부분이었음은 물론이다. 납세자 지킴이를 자처하는 한국납세자연맹은 소득공제 축소 방침에 대해 사이버 서명운동을 벌였다. 2월2일 시작된 서명운동에 지금까지 3200명이 넘는 누리꾼들이 동참해 반대 의사를 표시했다.

겨우 수천명에 불과한 것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세금 문제와 관련해 이렇게 많은 국민들이 집단적으로 반발하고 나선 것은 이례적이다. 적극적으로 인터넷에 찾아와 직접 컴퓨터 자판을 두드리며 글을 써 올린 국민이 이 정도면, 암묵적 동조자는 훨씬 많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또, 지금까지 조세 저항에 앞장선 계층은 주로 부유층이었는데, 이번에는 대부분이 서민이나 월급쟁이들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현정부의 지지층이라는 서민·중산층들이 세금 문제로 정부에 등을 돌리기 시작한 것이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정부는 ‘일부 언론이 진실을 왜곡했다’, ‘증세가 아니라 세제를 정상화하는 것이다’라는 식으로 안이하게 대처하지는 말기 바란다. 부화뇌동하는 일부 누리꾼들의 일시적인 ‘집단이기주의’ 정도로 치부해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수많은 국민들이, 그것도 대부분 서민들이, 정당한 판단에서건 왜곡된 정보로건, 이처럼 극단적으로 조세 저항을 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를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곳곳에서 허물어지고 있는 국민과 정부의 신뢰관계가 한계에 이르고 있음을 의미한다. 조세권은 정부와 국민을 잇는 일차적인 ‘신뢰 고리’다. 조세권까지 위협받으면 정부의 존립 자체가 위태로워진다. 이런 가정이 결코 비현실적인 것만은 아니다. 세계화의 진전으로 이제 국민들은 자신의 이익에 반하는 정부와 ‘관계’를 완전히 끊을 수도 있게 됐다. 자신에게 맞는 나라나 정부를 스스로 ‘선택’할 수 있게 됐다는 말이다.

이런 상황을 감안하면 최근의 조세 저항 움직임 그 자체는 어찌 보면 부차적인 문제다. 이번 사태의 본질은, 정부와 국민의 사이가 회복할 수 없을 정도로 점점 멀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세계화 물결 속에서 권장되고 조장된 ‘극단적인 개인주의’가 세금 문제를 계기로 자기 이익을 침해하는 정부를 거부하는 형태로 표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분명한 것은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이런 추세가 더욱 강화될 것이라는 점이다. 해법은 여기서부터 찾아야 한다. 정부와 국민 사이의 ‘관계’를 어떻게 복원할지, 정부란 국민에게 어떤 존재여야 하는지, 사라져가는 공동체의식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지 등에 대한 근원적인 고민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런 본질적인 문제는 놔둔 채 ‘세제 합리화’, ‘조세 형평 제고’를 아무리 외쳐봤자 헛수고일 뿐이다.


정석구 경제부 선임기자 twin86@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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