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7 18:20
수정 : 2006.02.07 18: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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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지연 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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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읽기
“한국인은 소득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는 국민이다.” 얼마 전 학술회의에서 한 외국 학자가 이렇게 말하는 것을 들었다. 뭘 보고 이렇게 느꼈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기업의 최고경영자가 일반 직원에 비해서 엄청나게 높은 보수를 받는 것을 미국 사람들만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지는 않는 것 같다. 유산을 물려받아 부자가 된 사람은 물론이고 당대에 큰 부를 축적한 사람에 대해서도 존경하기보다는 의심의 눈초리를 보낸다. 더구나 이들이 흥청망청 써대는 것은 곱게 봐주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걸 보고 우리가 소득 불평등에 민감한 국민이라고 생각했다면 잘못 해석한 것이 아닐까 싶다. 우리가 부자를 경원시하는 태도가 심한 편이라면 이는 불평등을 용인하지 않기 때문이라기보다는 축적한 부의 정당성에 대한 의구심을 표현하는 것으로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필자가 보기에 우리 국민은 오히려 소득 불평등을 너무 많이 용인하는 것 같다. 잘살고 못사는 건 팔자소관이라거나 가난은 나라도 구제하지 못한다는 말로 소득 불평등을 받아들인다. 그러니 국가에 소득 재분배 기능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크지 않다. 국가의 역할이 경제개발계획 내놓는 것인 줄로만 알았지, 재분배 기능을 하면서 약한 사람 먹여 살리는 역할도 하는 줄은 경험으로는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가처분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 지니계수가 시장소득을 기준으로 계산한 지니계수보다 얼마나 낮은지 계산해보면, 조세와 사회보장제도가 소득 불평등을 개선하는 데 어느 정도 효과를 발휘하는지 측정해 볼 수 있다. 스웨덴 같은 나라는 개선율이 100%를 넘어서 조세와 사회보장제도 적용 뒤에 지니계수가 절반 이하로 줄어드는 것을 보여준다.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평균은 42% 정도이고, 심지어 소득 불평등 개선효과가 가장 낮은 미국도 23%는 개선된다. 우리나라는 어떨까? 가처분소득 지니계수는 시장소득 지니계수보다 단지 4.5% 낮을 뿐이다. 조세와 사회보장제도가 재분배 기능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 결과 가처분소득 불평등도는 경제협력개발기구 회원국 중에서 가장 높은 편에 든다.
이런 형편이니 정부가 양극화 해소를 들고 나오는 것은 당연하다. 그런데 논의가 이상하게 전개되고 있다. 대통령이 양극화를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원이 필요하다고 하니 ‘세금을 올릴 것이냐 말 것이냐’의 논쟁이 되어 버린 것이다. 양극화 문제는 덮어두고 그냥 가자는 성장론자의 주장은 여기서는 얘깃거리도 안 되니 넘어가자.
이 시점에서 국민 대다수가 ‘증세 반대’를 외치는 상황을 초래한 데는 정부의 잘못이 크다. 조세의 규모는 일정하게 유지하더라도 조세제도 자체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정도는 다를 수 있다는 걸 외면하면서 증세를 추진하는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임금 근로자의 면세점 낮추기, 맞벌이 부부 공제 축소, 자영업자 소득 파악 등을 통한 세원 확충 이야기가 나오는데, 이렇게 해서 추가로 세금을 더 내게 되는 사람들은 소득 수준이 중하위권에 속하는 사람들일 가능성이 크다. 소득역진적으로 세제를 개편해서라도 세금을 더 거둔 뒤에 양극화를 해소하는 데 쓰겠다고 하는 말인가?
‘증세냐 감세냐’는 현시점에서는 적절치 않은 논쟁구도이다. 일단 우리나라의 조세와 사회보장제도가 불평등을 완화하는 기능을 하지 못하고 있는 상태라는 걸 좀 알고 넘어가자. 그 다음에 정말 양극화를 해소할 뜻이 있다면, 증세를 하더라도 어디서 세금을 더 거두어야 할지는 분명해진다.
장지연/한국노동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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