등록 : 2006.02.09 17:24
수정 : 2006.02.09 17:24
|
곽병찬 논설위원
|
아침햇발
그의 고향은 부산이라고도 하고 경기도 안성이라고도 한다. 주민등록상 나이는 50살. 아버지는 이탈리아계 미국인이라지만 기억은 전무하다. 남들과 같아지는 게 소원이었다. 그래서 이를 악다물고 학교를 다녔다. 혼혈 친구들은 차별과 따돌림이 싫어 학교 근처엔 가려고 하지도 않았지만 그는 고등학교까지 졸업했다. 국외입양이나 이민의 기회가 제법 있었지만 한국인으로서 한국에서 살고 싶었다. ‘순혈한’ 한국 청년들이 기피하는 군대도 가고 싶었다. 그러나 그에겐 허락되지 않았다. 병역법은 외모가 확연히 구별되는 혼혈인은 제2 국민역으로 편입하도록 했다. 다른 외모에 병역 미필이라는 딱지까지 붙었으니 일자리를 구할 수 없었다. 밤무대를 중심으로 호구지책을 이어갈 수밖에.
24살 때 불임수술을 받았다. 고통은 자신으로 끝내고 싶었다. 혹시 피부색이 다른 아이가 태어나, 자신처럼 차별받으며 살아갈 것을 생각하면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예 독신으로 살다가, 42살이 되어서야 터키인 아버지를 둔, 비슷한 처지의 부인을 만나 함께 살기 시작했다.
“제 이름은 배기철입니다. 저는 한국인입니다. 단지 피부색이 다를 뿐인데 …, 사람들은 자신과 다르다고 합니다.” 국가인권위원회의 공익광고를 통해 그의 얼굴과 이름은 제법 알려졌다. 지난해 창립한 국제가족한국총연합회 회장도 맡고 있다. 편견과 차별에 고통받던 선배 세대들이 1971년 이런 종류의 단체를 결성하려 했지만, 당시 정부는 ‘인종을 차별하는 것으로 오해받을 수 있다’며 불허했다.
미국의 〈로스앤젤레스 타임스〉는 최근 한국 사회가 혼혈인에 대한 차별을 극복하고 있다는 내용의 기사를 냈다. 대니얼 헤니, 데니스 오 등 일부 성공한 혼혈인들을 두고 쓴 기사였다. 한국인 어머니를 둔 하인스 워드가 슈퍼볼 최우수선수(MVP) 자리를 차지한 것에 열광하는 한국 사회를 보면, 그렇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인스의 어머니 김영희씨는 국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인스가 고등학교 다닐 때였죠. 한국 학생들이 학교간 친선 야구경기를 하면서 하인스를 초청했습니다. 하인스는 당시 야구선수로 유명했죠. 경기가 끝나고 선수들이 밥 먹으러 가는데, 주최 쪽은 ‘한국 아이들’만 식당으로 데리고 갔답니다. 하인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시는 한국 아이들과 놀지 말아라.’ 1998년엔 어머니가 돌아가셔 한국엘 갔습니다. 그런데 제법 배운 듯 보이는 한국 사람들이 제 뒤에서 침을 뱉더군요. 얼마나 잘났다고.”
배기철씨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 사람들이 개를 애지중지하는 걸 보면 이런 생각이 들어요. 개는 그렇게 예뻐하면서도 왜 피부색이 다르다고 사람을 차별하는 걸까. 한국에선 피부색이 다르면 개만도 못한 건가.”
개만도 못한 그들의 처지는 이런 통계로 뒷받침된다. 2003년 펄벅재단 한국지부는 기지촌 출신 혼혈인 673명을 대상으로 소득과 주거행태를 조사했다. 78%가 월수입 50만원 미만이었다. 56%는 실업 상태였고, 취업자는 대부분 단순노무직(33%)이었으며, 기술직은 4%였다. 69%가 월세, 14%가 전세에서 살았다. 2001년 184명의 혼혈아동을 상대로 한 실태조사에선, 초등학교 미진학 및 중도탈락률은 일반학생의 경우 0%에 가까웠으나 혼혈아동은 9.4%나 됐다. 중학교 미진학 및 중퇴율은 일반학생 1.1%에 비해 혼혈아동은 17.5%였다. 그런 이들이 얼마나 되는지 한국 정부는 조사도 않는다. 아마 혼혈인의 존재 자체를 무시하고 싶어서 그런지 모르겠다.
곽병찬 논설위원
chankb@hani.co.kr
광고
기사공유하기